새 시대를 향하여 (28) - 탈진이 일어날 때 / 행 18: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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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두익 댓글 작성일25-08-31본문
탈진이 일어날 때 행전 18:1-11(28회) 2025. 8/30일 주일 설교 1차
여러분, 요즘 우리 시대를 가만히 보면 “탈진 사회”라고 불러도 될 만큼 많은 사람들이 지쳐 있습니다. 직장에서는 끝없는 성과 압박에 시달리고, 가정에서는 책임감이 무겁게 어깨를 누르고, 교회 사역에서도 봉사와 섬김 속에 어느새 힘이 빠져 버리는 경험을 합니다. 그래서 요즘 흔히 듣는 말이 ‘번아웃(Burnout)’입니다. '다 타서 없어진 상태' 말합니다. 열심히 달려왔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불이 꺼져 버린 것처럼 의욕이 사라지고, ‘아, 더 이상 못 하겠다’ 싶은 자리 말입니다. 심리학자 '크리스티나 메슬로우는' '약이 다 달아진 건전지와 물이 다 증발한 주전자'에 비유했습니다. 이 탈진은 몸의 기력이 빠지고 마음의 극도로 쇠약해지고 영혼이 극도로 침체된 상태를 말합니다.
혹시 여러분도 그런 자리에 계십니까? 신앙생활을 하고, 교회에서 봉사도 하고, 가정에서도 책임을 다하려고 애썼는데, 정작 마음은 공허하고 힘은 빠져버린 자리. 오늘 본문 속 바울이 바로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놀라운 사역을 이어오던 바울이 고린도에 도착했을 때, 그는 탈진의 자리, 두려움의 자리, 무력감의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바울은 지금 2차 전도 여행 중에 있습니다. 당시 바울이 복음을 들고 가는 곳마다 영적인 불모지입니다. 이런 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다가 얼마나 많은 고난과 수치를 당했습니까? 그래도 그 가운데 하나님이 예비해 둔 영혼들이 돌아 올 때 그는 다시 힘을 얻곤 했습니다. 그 한 영혼의 기치 때문에 자신의 몸을 돌보지도 않은 채 밤낮 뛰어다녔습니다. 그러나 복음의 현장에서 부딪히는 영적 싸움은 그의 피를 마르게 할 때가 한 두번이 아닙니다.
바울은 마게도냐에 들어오면서부터 끊임없는 고난을 당했습니다. 빌립보에서는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혔고, 데살로니가에서는 유대인들의 핍박으로 도망쳐야 했고, 베뢰아에서도 대적들이 쫓아와 결국 아덴으로 피신해야 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계속 도망 다니듯 사역하다 보니, 바울의 마음에 피로와 긴장이 쌓였던 겁니다. 본문에도 보시면 바울이 고린도 도시에 와서 사역을 합니다. 막상 고린도에 들어섰지만, 이 도시는 한 마디로 세속화된 도시입니다. 바울 당시 ‘고린도인처럼 산다’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도덕적인 기준을 포기한 채로 매우 세속적인 죄에 몰두하는 삶을 사는 사람을 두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무역항을 끼고 발전하던 상업도시로서와 로마의 검투 경기를 수용한 스포츠 오락도시의 영향으로, 고린도 시민들은 황금과 오락에 빠져 죄의 안락한 심연으로 빠져들어 있었습니다. 이 세손에 찌들고 병든 죄악의 도시 한 복판에 서 있는 바울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더구나 여기 머무는 동안에도 바울을 향한 비방과 박해는 계속되었습니다. 본문 6절입니다.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그들의 비방과 적대행위가 얼마나 심했던지 사도 바울은 옷을 털면서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거의 저주에 가까운 심판을 선언하는 말입니다.
몸은 지치고, 마음은 외로웠으며, 앞으로의 사역이 잘 될지에 대한 불안감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때 바울의 내적 에너지가 거의 바닥나 있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믿음 좋은 바울이라도 마치 권투선수가 계속 잔펀치를 계속 맞게 되다보면 그냥 쓰러지게 됩니다. 이 과정속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탈진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바울을 다시 세우셨을까요? 오늘은 “탈진이 일어날 때” 우리가 붙잡아야 할 세 가지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Ⅰ 탈진이 일어날 때 하나님의 만져 주심을 경험해야 합니다. (9-10절)
본문 9-10절을 보면, 밤에 주님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을 찾아오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음이라.” 여러분,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만져주심입니다. 바울이 기운을 잃고 쓰러져 있을 때, 주님은 ‘내가 함께 있다’는 약속으로 그를 다시 세우셨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한계가 있습니다. 아무리 강한 신앙인이라도 두려움과 무기력에 빠질 수 있습니다.
이 상황에 대해 자신이 그 당시 어떠한 상태였는지를 훗날 당신이 개척을 한 고린도 교회를 향해 한 통의 편지를 보내게 됩니다. 그는 편지 속에서 옛날에 고린도 도시에 들어갔을 때의 일을 회고하고 있습니다. 고전 2:3절에 보면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너희 가운데에 있을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아무리 읽어도 너무나 솔직하고 처절한 고백입니다. ‘너희 가운데에 있을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얼마나 솔직한 고백입니까?
여러분, 이런 인생을 향해서 우리 예수님은 상한 갈대요 꺼져 가는 등불의 한 심지와 같다고 하십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인간은 그 누구라도 불구하고 저 전능하신 여호와의 손길이 붙잡아 주시지 않으면 한순간도 지탱할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다 그렇습니다 다 괜찮은 모습으로 앉아 있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다 상처가 있어요, 질 그릇 같은 연약함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인생의 한 복판에 다가오신 예수님은 3절을 보면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 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며”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 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시는 주님은 우리의 눈물을 아시고 탄식도 아십니다. 우리의 후회도 아시고 허물도 아십니다. 아들을 죽여서까지 우리를 구원하셨던 하나님은 독생자 아들의 부르짖음을 외면하면서까지 죄인 된 우리를 용서하시고, 사랑하시고 받아주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자리에 하나님이 찾아오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탈진할 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충고나 자기 위안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임재와 위로입니다. 여기 9절에 한밤, 두려움 속에 빠져 있는 바울에게 다가오셔서 “두려워하지 말라” – 바울의 두려움의 뿌리를 만져주십니다. 그리고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 복음을 포기하지 말고, 사명을 붙잡으라는 말씀입니다. 무엇보다 “내가 너와 함께 있다” – 임마누엘의 약속입니다. 상황이 아니라, 주님이 함께하신다는 사실이 힘이 됩니다. 그가 두렵거나 탈진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이 성 중에 내 백성이 많다” – 이미 준비된 영혼들이 있다는 약속입니다. 이 사역 포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삶의 무게에 짓눌려 탈진의 자리에 있을 때, 주님이 우리를 찾아와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한다.” 여러분, 이 음성을 붙잡으시기를 바랍니다. 엘리야에게는 세미한 음성으로, 바울에게는 환상 가운데 말씀으로 찾아오셨습니다. 우리에게도 말씀과 성령의 음성으로 찾아오십니다. 그러므로 두려움 속에 있을 때 말씀을 붙드셔야 합니다.
Ⅱ. 탈진이 일어날 때 동역자의 위로를 붙잡으라 (2-3절, 5절)
하나님은 바울 곁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붙여주셨습니다. 같은 장막을 만드는 일을 하면서 함께 살고, 함께 일하며 위로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롬16장에서 이들 부부와의 관계를 표현하는 아주 의미 있는 메시지 하나를 남깁니다. 16:3-4절에 보면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 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저희에게 감사하느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이 부부는 복음을 위해 자신의 전부를 내놓고, 자신의 행복조차 포기했습니다. 그들은 행복을 포기했지만 실제적으로 그 부부는 가장 행복한 부부였습니다. 이처럼 복음은 사람을 놀랍게 변화시키고 사람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듭니다. 그리고 부부는 마음도 함께 할 뿐 아니라 사명에서도 함께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바울이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할 때에 이 부부의 집에서 일년 반 동안 머물었는데 이 일은 부부가 마음을 같이 하지 못한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행18:2,3). 아무리 선교사라지만 어느 누가 자기 집을 1년 반 동안이나 제공하겠습니까? 또한 본문 18절을 보면 바울이 고린도를 떠나 수리아로 떠날 때에 이들 부부도 바울의 선교사역을 돕기 위해 바울과 함께 했습니다.
바울은 이들을 동역자로서 어떻게 평가합니까? 롬16:4절에 보면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 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저희에게 감사하느니라” 바울을 위해서라면 물질도, 심지어 생명도 아끼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바울을 위하는 것이 곧 주님을 위하는 것이요, 복음을 전하는 것이 곧 주님을 위하는 일이라는 확고부동한 믿음을 가진 부부였기에 바울을 위해서는 자기의 생명까지 아끼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인물들입니다. 목이라도 대신 내어놓고 싶을 정도로 존경하고 사랑할 만한 사람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에서 얼마나 행복한 자들입니까?
또한 5절을 보면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에서 합류합니다. 혼자 외롭게 싸우던 바울에게 다시 사역의 힘을 주는 동역자들이 온 것입니다. 여러분, 탈진은 주로 혼자 있을 때 찾아옵니다. 고립될 때, 마음을 나눌 사람이 없을 때 힘이 빠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늘 사람을 통해 위로와 격려를 주십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같은 지체들, 실라와 디모데 같은 동역자들이 우리를 다시 일으킵니다. 현대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직장에서든, 가정에서든, 교회에서든 함께 짐을 져 줄 동역자가 필요합니다. 내 옆에 있는 성도, 가정 식구, 믿음의 친구가 바로 하나님의 위로의 통로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두 사람이 함께 있으면 넘어져도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거니와”(전 4:10)라고 말합니다.
Ⅲ 탈진이 일어날 때 사명의 자리를 지켜라 (4, 11절)
여러분, 탈진할 때 가장 큰 유혹은 사명의 자리를 떠나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만둘까? 내려놓을까?” 하는 생각이 밀려옵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 자리를 지킬 때, 하나님은 새 힘을 주십니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가장 긴 시간을 머물며 교회를 세우게 됩니다. 즉, 탈진의 자리에서 포기하지 않고 사명을 지켰기 때문에 열매가 맺힌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그렇습니다. 지금은 힘들고 버겁지만, 가정을 지키고, 교회를 붙들고, 맡겨진 일터에서 믿음으로 버티면, 하나님은 반드시 새 힘을 공급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려워하는 마음을 주신 게 아닙니다. 디모데후서 1장 7절 말씀처럼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바울도 고린도에 와서 정말 지쳐 있었어요. 두려움이 마음을 꽉 잡고 있었죠. 그런데 하나님께서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한다” 하셨습니다. 그 음성을 붙잡고 바울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1년 6개월 동안이나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며 교회를 세워갔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잃어버린 우리의 영혼을 찾아내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마치 목자가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우리에 남겨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나선 것처럼, 잃어버린 동전 하나를 찾기 위해서 등불을 환하게 켜놓고 온 집안 구석구석을 쓸며 찾아낼 때까지 찾은 것처럼,잃어버린 우리를 찾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죄의 종노릇하는 우리를 찾아 구원하시기 위해서,수치와 부끄러움도 모른 채 인간성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우리를 찾아 회복하시기 위해서, 참된 안식을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우리에게 삶의 희망과 기쁨을 선물하시기 위해서, 세상의 폭력성에 노출되어 언제 해코지를 당할지 몰라 불안에 떠는 우리에게 참된 평안을 주시기 위해,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어 괴로움에 밤잠을 설치며 고통 중에 신음하는 우리를 회복시켜 하늘의 소망을 품고 살게 하시려고, 내 스스로 나를 파괴하도록 만드는 내 안의 어둠의 세력을 몰아내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회복되도록 하시기 위해서 주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오늘 우리는 태신자를 작정하는 날입니다. 여러분이 쓴 명단이 그들이 예수님을 만나면 달라지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그리고 주님의 품에 안길 때 그 은혜와 구원의 감격을 반드시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만이 우리에게 희망입니다. 탕자를 맞아주신 아버지처럼, 우리의 하나님은 우리가 그 어떤 절망의 상태에 놓여 있다 하더라도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기다리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끌어안고 우리를 회복시켜 주십니다. 우리를 회복시켜 나를 나답게 만드시기 위해서 우리 주님께서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내 안에 사라진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여 하나님과 깊은 친밀감 속에서 하나님과 잇대어 영원한 삶을 살도록 하시기 위해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모든 것을 회복하여 하늘 백성으로 하늘의 기쁨과 평안을 온전히 누리며 살도록 말입니다.
이 엄청난 일을 나에게 맡겨 주셨다면 어떻해야 하겠습니까? 우리 다 부족하고 바울도 지쳐서 두려움 속에 몸부림쳤습니다. 오늘 우리도 똑같습니다. 두려움이 엄습하고, 현실이 막막하고, 마음이 무너져 내릴 때가 있죠.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시면서 말씀하십니다. “포기하지 말아라, 나는 네게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을 주었다.”
그러니 성도 여러분, 어떤 상황에서도 물러서지 맙시다. 낙심하지 맙시다. 포기하지 맙시다.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다시 일어서고, 사랑으로 서로를 붙들고, 절제함으로 끝까지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의 눈물과 기도로 주의 은혜 앞에 선 그들이 나의 동역자가 됩니다.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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