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생존 지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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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두익 댓글 작성일25-06-15본문
오늘도 예배자로 모인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넘치는 시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점점 사계절이 사라지고 벌써 30도를 웃도는 더위 속에 지내다 하늘의 생수를 마시기를 갈망하여 이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삼국지에 나오는 유명한 전쟁인 적벽대전을 영화로 보신 분이 계실 것입니다. 적벽대전은 중국 삼국시대 초기에 벌어진 가장 유명한 전투 중 하나로, 서기 208년, 유비와 손권의 연합군이 조조의 대군을 상대로 장강(長江) 유역에서 벌인 전투입니다. 이 전투는 단순한 전쟁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약자의 지혜가 강자의 숫자를 이긴 전형적인 사례로 꼽힙니다.
여기에 보면 제갈공명이 나옵니다. 제갈공명이 지휘관들에게 작전을 지시할 때에 종종 사용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절대 승산이 없는 싸움인데 제갈공명은 그 상황을 정확히 꿰뚫고 ‘지침서’를 줍니다. 편지를 서너장 써주고 “네가 어느 지점에 도달하면 그 곳에서 편지를 펴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바람이 언제 바뀔지, 그 한 장의 지침서가 전쟁의 승패를 바꿨습니다. 그래서 지휘관들은 앞을 내다보는 이 제갈공명의 지시를 따라 어려울 때마다 편지를 보고 난관을 극복하면서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모습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동성의 여러분! 그렇다면 우리에게 위기가 닥쳐올 때 가장 좋은 태도는 무엇일까요? 무엇보다 먼저 부정적인 태도를 불식하고 긍정적인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한 마디로, 기죽지 말라는 겁니다. 잠24:10절 말씀을 보면 "네가 만일 환난 날에 낙담하면 네 힘이 미약함을 보임이니라" 환난이 닥칠 때 기죽으면 주저앉고 만다는 겁니다. 그러면 이미 패배한 겁니다. 위기가 닥쳐와도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는 것이 승리의 단초입니다. 제갈공명은 그 상황을 정확히 꿰뚫고 ‘지침서’를 줍니다. 편지를 서너장 써주고 “네가 어느 지점에 도달하면 그 곳에서 편지를 펴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도 예외가 아닙니다. 전쟁 같은 시대에 살고 있지 않습니까? 진리가 흔들리고, 죄가 정상처럼 여겨지고, 교회의 영향력이 점점 약해져 가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영적 전쟁’ 한가운데 있는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 신앙인에게 ‘영적 생존 지침서’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Ⅰ. 첫 번째 지침: “세월을 아끼라” – 시대를 분별하라 (15-16절)
여기 15절과 16절에 보면 바울은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지금 바울은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라고 외칩니다. 지혜 없는 자는 현재만 보고 살아갑니다. 당장 눈앞의 일만 처리하면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관심도,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도 없이 자기 중심으로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지혜 있는 자는 시간을 분별하고,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이 무엇인지 민감하게 분별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온 56년의 삶을 돌아보고 앞으로 100년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어떻게 다시 일어나야 할지 깊이 고민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출발점이 바로 ‘주의 깊이, 지혜 있게 살아가는 삶’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때가 악하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들으면 마치 바울이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보고 있는 것 같지 않으신가요? 요즘 세상이 정말 악하다는 말, 우리가 그냥 한탄하듯이 하는 말이 아닙니다. 바울이 살던 시대도 우상 숭배와 음란, 정권의 부패, 진리 왜곡으로 가득한 시대였고,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뉴스를 보면, 전 세계가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 있습니다. 전쟁은 끝이 없고, 돈을 위 해서라면 사람 목숨도 가볍게 여겨집니다. 성적 윤리는 무너지고, 사람들은 악한 것을 좋다 하고 선한 것을 미련하다 비웃습니다.
사람의 말에는 진실이 사라지고, SNS에는 거짓과 조작이 넘쳐납니다.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세속적인 가치관이 침투해버려서, 진리를 외치는 자는 오히려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기도 하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시대에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바울은 “지혜 있게 살아라. 세월을 아끼라”고 권면합니다. 여기서 ‘세월을 아끼라’는 말은, 원어로 보면 “기회를 사라”, 다시 말해 놓치지 말고 적극적으로 붙잡으라는 뜻이에요. 왜냐하면, 지금 이 시대는 우리의 시간을 빼앗으려는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핸드폰 한 번 열었다가 한 시간 금방 가고, TV나 유튜브 보면서 하루가 흘러가고, 중요한 말씀 묵상이나 기도는 '나중에 하지' 하다가 결국은 미뤄버리게 됩니다. 바울은 이어서 영적 생존 지침서로 두 번째 카드를 꺼냅니다.
Ⅱ. 두 번째 지침: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17절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이 말씀은 우리에게 매우 분명하게 도전합니다. ‘그냥 살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며 살아라’는 말입니다. 자, 그럼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뭔가요?” 우리는 종종 기도할 때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주세요.” 그런데, 정작 그 뜻이 뭔지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성경은 하나님의 뜻을 두 가지로 크게 설명합니다.
첫째, 우리의 구원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디모데전서 2장 4절에는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신다”고 말합니다. 즉,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예수 믿고 구원받는 걸 원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우리를 죄에서 건져내고, 하나님과 다시 화목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요6:38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라.” 그리고 39-40절에서 그 뜻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말씀하시는데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 아버지의 뜻이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첫 번째 뜻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는 것입니다.
둘째, 구원받은 자가 어떻게 사느냐는 삶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살전4:3절에 보면,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예수 믿고 나서 그냥 적당히 사는 게 아니라, 점점 거룩해지고, 예수님 닮아가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거짓에서 벗어나고, 정결함을 지키고, 용서하고, 사랑하고, 섬기는 삶 말입니다. 무엇보다 이땅에서 하나님 맡긴 사명을 위해 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걸 그냥 아는 게 아니라 ‘이해’하라고 말씀합니다. 여기 ‘이해하다’라는 말은 이건 단순히 지식적으로 아는 걸 넘어서, ‘전체를 종합해서 깨닫고, 실제로 적용하며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의 뜻이 이거구나’라고 머리로만 아는 게 아니라, 그 뜻을 삶 속에서 분별하고 실천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면 한 청년이 직장을 옮겨야 하나 고민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어요.” 그럼 저는 이렇게 묻습니다. “지금 선택이 당신을 더 하나님께 가까이 데려가게 하나요 ? 아니면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나요?” 그 질문 앞에 우리는 정직해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꼭 신비롭고 환상처럼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늘 말씀 속에, 기도 속에, 그리고 양심 속에 계시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것을 피하려고 하거나, 안 들으려고 할 때가 많다는 거죠.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대는 정말 정신없이 돌아갑니다. 눈만 뜨면 뉴스, SNS, 각종 소음 속에 살고 있어요. 그러다 보면 하나님의 뜻은 점점 흐릿해지고, 우리는 그냥 세상이 끌어가는 대로 살아가게 됩니다. 바로 그게 ‘어리석은 자’의 모습이에요. 바울은 그걸 경고합니다.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주의 뜻이 무엇인지 분명히 깨달으라.”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영적 생존 지침서’가 주어집니다. 이 지침서를 순종하지 않으면 우리의 삶은 무기력하게 됩니다. 잘 들으셔야 합니다. 다름아닌
Ⅲ. 성령 충만하라는 것입니다. (18)
18절에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여기 성령 충만은 "가득 채우다", "지배하다", "통제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 성령 충만한 삶과 술에 비교를 합니다. 18절입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여기에 가장 중요한 말씀은 “성령으로 충만하라.” 이것이 핵심입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바울은 이 말씀을 시작하면서 “술 취하지 말라”고 먼저 이야기합니다. 왜 그럴까요? 여기서 ‘술 취함’은 단순히 음주 문제가 아닙니다. ‘방탕한 것’, 즉 삶의 통제력을 잃고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는 상태를 말합니다. 술에 취하면 자기 판단력이 흐려지고, 감정이 앞서고, 결국 실수하거나 무너지는 것처럼 세상에 취하고, 욕심에 취하고, 자아에 취하면 하나님을 놓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딱 잘라 말해요. “술 취하지 말고, 성령으로 충만하라!” 다시 말해, 무엇에 지배받을 것이냐의 문제입니다. 술은 우리를 망가뜨리고, 성령은 우리를 살립니다. 술은 마음을 흐리게 하고, 성령은 마음을 밝게 합니다. 술은 통제를 잃게 하고, 성령은 우리 삶을 바르게 인도합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성령 충만하다’는 건 뭘까요? ‘여기서 “충만함을 받으라”는 말은 '계속해서 채워져라', '지속적으로 충만해져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성령이 아니고서는 구원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구원 이후의 우리의 삶은 계속 이 땅에서 세상의 영향력에 흔들리지 않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 성장과 맡긴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는 한 번 받고 끝나는 게 아니라 매일매일, 계속해서 성령으로 채워져야 한다는 겁니다. 성령 충만은 무슨 신비한 체험이나 무거운 감정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과 마음으로 내 생각과 행동이 채워지는 상태, 즉 하나님이 내 안에서 주도권을 가지시는 삶입니다. 성령충만하라는 말은 다른 말로 표현을 하면 성령의 길들임을 받는다는 것으로 쓸 수가 있습니다. 내 혀, 눈, 생각, 손과 발, 가치관을 길들이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이 나를 지배하시도록 내 생활의 영역을 열어두는 것, 내가 그분께 길들여지는 것이 성령충만입니다. 이렇게 성령님께 매일 지배를 받고, 성령님께 길들임을 받을 때에 우리의 삶은 바뀌게 됩니다.
영적 능력을 받지 아니하면 우리는 패배하며 실패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성령충만함을 받고 영적 능력이 강물처럼 흐르면 악한 영들을 분별하고 결박할 수 있습니다. 더러운 귀신들은 성령충만함을 받은 사람에게는 덤비지 못합니다. 오히려 벌벌 떨며 떠나갑니다. 성령충만하게 되면 환경을 다스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믿음이 있다면, 영적 능력이 있다면 바람과 폭풍도 잠재울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업의 환경을 제어할 수 있습니다. 직장의 환경을 다스릴 수 있습니다. 가정의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자녀의 환경을 바꿀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동성의 성도 여러분, 주님은 우리를 고아처럼 결코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셔서 우리와 영원히 함께하게 하셨습니다. 여러분,우리는 결코 고아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어떻게요?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심으로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십니다. 아버지의 손을 잡고 있는 아이는 자신보다 덩치 큰 다른 아이 앞에서 결코 주눅들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곁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 두려움이 밀려오기도 하고 내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고아가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면,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우리와 함께 하심을 안다면 우리는 결코 두렵지 않습니다.
로마서 8:26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그렇습니다. 때로 우리는 마땅히 기도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내 생각대로, 내 요구대로 기도할 때가 많습니다. 그것이 나에게 유익이 되지 않고,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도 맞지 않는데도 말입니다. 그럴 때 성령께서 탄식하며 기도하십니다. 우리의 잘못된 기도에도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으로 응답해 주시도록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성령이 오시면 우리가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 아는 지혜를 주십니다. 그리고 잘못된 기도에도 선한 응답을 해 주시도록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하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담대히 하나님께 나아가 무엇이든 기도할 수 있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기도에 선하게 응답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앞에 놓인 어려움 때문에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헌신도 멈추고 희생도 하지 않는 인생이 아니라 그 장애물을 넘는 믿음의 장부로 설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를 향해 하나님은 딤후1:7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여러분, 두려움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닙니다. 두려움은 사단이 우리를 마비시키고, 주저앉히고,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만들려는 전략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능력! 사랑! 그리고 절제입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은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시는 분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이 임하신 여러분들은 참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지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특별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말 영적 생존 지침서인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지 말고 읽기만 하지 말고 쓰기만 하지 말고 그것을 나의 것으로 삼는 지침서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성령 충만한 삶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3가지 ‘영적 생존 지침서’를 보았습니다. 첫째가 세월을 아끼라 둘째가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참 시대를 살아가는데 중요한 지침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빠지면 지침서는 휴지 조각이 되어 버립니다. 바로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이것은 명백한 주님의 명령입니다. 이제 56년 생일을 다시한번 기억하며 이 힘든 시절 우리 모두 신앙생활은 결코 우리의 힘으로 되지 아니하고,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신, 곧 성령의 능력으로만 되는 줄 알고, 철저하게 성령님을 의지하기 바랍니다. 이 성령의 충만한 인도하심을 계속 받으며 살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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