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주년 창립기념설교 "섬김과 나눔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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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두익 댓글 작성일25-06-08본문
오늘은 우리 교회의 창립 56주년 기념일입니다. 지금까지 에벤에셀로 지켜주신 주님의 은혜에 먼저 감사드립니다. 생각해보면, 우리 한국 사회도 참 많이 바뀌었고, 세대도 바뀌었습니다. 어려웠던 시절, 동성교회는 노른산 시장 한 귀퉁이에서 작은 예배처소로 시작을 했습니다. 우리 교회가 이렇게 주님의 몸 된 공동체로 세워졌다는 것은 사람의 힘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요, 하나님의 은혜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우리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보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 교회의 영적인 온도는 어떠한가?” “주님이 보실 땐 과연 어떤 평가를 받고 있을까?” 나의 모습에서 예수의 향기가 나는가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질문입니다.
주님이 이곳에 교회를 왜 세워주셨는지, 그리고 지금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진지하게 돌아봐야 할 때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2장 15절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구원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라." 여기서 말하는 ‘향기’는 하나님이 받으시기에 기쁘신 향기, 제물이 죽음으로 번제단에서 올려지는 제물의 향기를 의미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희생의 향기 제물로 들이셨듯이, 우리 교회도 그리스도의 향기를 이 세상에 흘려보내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오늘 어떤 향기를 내고 있습니까? 교회 창립을 맞이하여 우리 가운데 예수님의 마음이 없다면, 예수님의 사랑이 흐르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냥 겉모양만 교회인 것입니다. 향수병은 있지만, 향수는 없는 상태죠. 우리가 이 교회를 통해 구원받고 은혜 입은 사람이라면, 그 은혜는 그냥 ‘좋은 기억’으로 끝날 수 없습니다. 그 은혜는 책임이고 사명입니다. 세상을 향해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해야 할 ‘사랑의 빚진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바울은 롬 1:14절에 "나는 모든 사람에게 빚진 자다."라고 고백합니다. 참하기 힘든 고백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예수를 만나고 나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 모든 것이 빚진 인생임을 고백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 15:10절에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자기가 받은 사랑이 너무 크니까. 그 사랑은 혼자 간직할 수 없고, 이웃과 나누어야 할 향기이기 때문에 빚진자 라는 고백을 합니다. 오늘 창립주일을 맞이해서 막10:45절을 중심으로 우리 교회가 어떤 향기를 이 땅에 전해야 하는지를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1. 예수님의 섬김의 향기를 알아야 합니다. 45절 상반절
예수님은 45절 상반절에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섬기려 하고”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 보면 주님은 섬김을 받으려 하지 않으시고 섬기려 이 땅에 오셨습니다. 섬김이란 의미는 ‘식탁에서 시중들다’, ‘하인의 자세로 누군가를 돌보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단순한 예의 차원이 아니라, 몸을 굽히고 손을 더럽히는 봉사, 철저히 상대방 중심의 행동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나는 만왕의 왕이다, 나를 섬겨라”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어요. 오히려 자신이 종의 자리로 내려오셔서, 다른 사람을 섬기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리더십이었고, 예수님의 복음의 정신이었어요.
빌립보서 2장 6~8절을 보면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이것이 섬김의 최고의 모습니다. 여기 여기서 중요한 표현 하나 나옵니다. “자기를 비우셨다”는 ‘완전히 비우다’, ‘텅 비우다’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자신 안의 권리, 명예, 특권을 아예 내려놓으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죄로 죽어가던 우리를 건지기 위해 하나님은 하나님 되심을 고집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자기를 ‘비우심’으로 우리를 채우고자 하셨습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보세요. 우리가 가진 것 중에 좋은 거 하나만 내려놓기도 얼마나 어렵습니까? 자리 하나, 권리 하나, 내 이름 하나 포기하는 거 쉽지 않잖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하늘 보좌를 내려놓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가운데 오실 때 어떤 모습으로 오셨습니까? 베들레헴 말구유에 천한 목수의 아들로, 갓난아기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저 시골구석인 나사렛에서 성장하셨습니다. 인간으로서 더 이상 천해지기 어려울 정도의 모습입니다. 이 땅에 오셔서 주님은 이 땅에 머물며 섬기는 동안 참 많은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당시 세상에 힘깨나 쓰는 권력자들 앞에 조금도 위축당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사람들이 눈 길 한번 주지 않는 소외된 자들의 친구가 되시고 그들의 상처와 아픔을 감싸 주시고 그들을 섬겼습니다.
우리 교회가 이곳에 개척할 때 이 동네는 어려운 사람들이 살던 현장이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지하에 세들어 사는 분들이 참 많았습니다. 이곳에 개척하신 목사님이 무엇을 바라셨겠습니까? 무슨 부귀영화를 보려고 이곳에 개척을 하셨겠습니까? 사모님은 걸인들을 돌보다 자신에게 사랑을 베풀던 걸인이 사모님의 귀를 때려 한쪽 귀를 듣지 못했습니다. 이런 상처와 아픔의 현장에서 우리 동성교회가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섬김으로 이 지역에 예수님의 향기를 세상에 보여주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는 주님을 닮고 섬기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이 광진구 자양동에 우리가 우리의 이웃에게 무엇을 섬기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아직도 이곳에 예수를 만나야 할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닙니다. 사람은 겉모양만 봐 가지고는 그 삶을 다 알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 속에 어떤 슬픔이 담겨 있는지, 또 가슴 깊은 곳에 어떤 아픔의 눈물이 담겨 있는지, 뭐 사람의 겉모습만 봐 가지고는 도저히 알 수 없잖아요. 누구나 앞문을 굳게 닫고 오십니다. 그러나 그것은 앞모습뿐이지, 여러분의 삶의 옆문이나 뒷문으로 들어가 보면, 어느 가정, 어느 개인 할 것 없이, 예외 없이 깊은 탄식과 자기 연약함과 죄의 상처와 자기만의 안고 있는 삶의 특별한 아픔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이런 인생을 향해서 우리 예수님은 상한 갈대요 꺼져 가는 등불의 한 심지와 같다고 하십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인간은 그 누구라도 불구하고 저 전능하신 여호와의 손길이 붙잡아 주시지 않으면 한순간도 지탱할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다 그렇습니다 다 괜찮아 보이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다 상처가 있어요, 질 그릇 같은 연약함이 있습니다. 사42:3절을 보면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 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며”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 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시는 주님은 우리의 눈물을 아시고 탄식도 아십니다. 우리의 후회도 아시고 허물도 아십니다. 아들을 죽여서까지 우리를 구원하셨던 하나님은 독생자 아들의 부르짖음을 외면하면서 까지 죄인 된 우리를 용서하시고, 사랑하시고 받아주시지 않으셨습니까? 그 섬김의 향기를 우리가 얼마나 실천하며 살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하늘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신 것도 놀라운데, 그분이 이 땅에서 하신 일이 ‘섬기는 일’이었습니다. 그 섬김은 어디까지 섬겼습니까?
Ⅱ. 나눔 - 목숨까지 내어주신 대속의 향기 (45절 하반절)
예수님은 단순히 섬기시는 것에 그치지 않으시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대속물’이라는 단어는 종을 자유케 하기 위해 값을 치르는 것을 말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인간의 죄를 대신 치르는 희생제물이라는 말입니다. 도대체 무엇이 아쉬워서 자기 목숨을 버리셨습니까? 하나님은 죄에 대해서 참지 못하는 분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모든 죄를 혼자 떠맡으셨으니 그에게 무엇이 뒤따르게 될까요? 하나님의 심판이 찾아올 수 밖에 없습니다. 죄에 대한 무서운 심판이 주님에게 쏟아지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십자가에서 살 찢고 피 흘리심으로 희생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 대신 하나님의 진노를 받으셨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죄와의 관계는 단절되어 버린 것입니다. 우리는 죄에서 자유한 몸입니다. 드디어 우리의 마음에 평안이 찾아옵니다. 모든 죄 용서받은 놀 라운 기쁨이 찾아옵니다.
“너희 죄 흉악하나 눈과 같이 희겠네 너희 죄 흉악하나 눈과 같이 희겠네“ 찬송가 가사대로 우리의 모든 흉악한 죄를 용서받았습니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었나요?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짊어지고 희생제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나의 모든 죄를 다 떠안으시고 내 인생의 가장 복된 길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이제는 죽음도 우리를 따라오지 못합니다. 이제는 율법도 우리를 정죄하지 못합니다. 이제는 마귀도 우리를 사로잡지 못합니다. 우리는 죄에서 해방된 사람입니다. 이 동성교회에서 우리는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까?
중국에 전해 오는 미국 선교사 이야기입니다. 이분이 중국에서 사역을 하고 있을 때 전염병이 창궐했습니다. 전염병으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고, 또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당시 중국의료 기술로는 어떻게 대응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분이 나름대로 해결책을 생각해 냈습니다. 미국으로 병원균을 가지고 가서 백신을 만들어 오는 것입니다. 유리병에 병원균을 담아서 미국으로 갔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해서 입국수속을 하는데, 중국의 전염병 소식이 전해진 터라 검역이 철저했습니다. 할 수 없이 이분은 그 병원균을 자기 입에 넣고 유리병을 버렸습니다.
그리고 검역소를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그 후 바로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의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나는 지금 중국에서 번지고 있는 전염병에 감염되었습니다. 이 병원균을 뽑아 백신을 만들어 주세요. 그리고 그것을 중국에 보내 많은 사람들을 살려 주십시오!” 그 후 이 선교사는 전염병이 악화돼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희생의 대가로 백신이 만들어져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했습니다. 이 선교사가 중국인들을 살려보려고 미국으로 온 것처럼, 하나님이 세상에 오셔서 인간이 되신 것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희생 제물로 자신을 다 드렸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지난 한 주간 ‘첫사랑을 회복하라’는 말씀을 가지고 계2,3장을 붙잡고 한 주간 엎드렸습니다. 계 2-3장을 보면 소아시아의 7교회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교회들에 대한 주님의 평가를 보면 다양합니다. 칭찬만 있는 교회가 서머나 교회와 빌라델비아 교회 두 교회입니다. 칭찬과 책망을 함께 들은 교회가 에베소 교회, 버가모 교회, 두아디라 교회, 그리고 사데 교회 네 교회입니다. 그리고 책망만 들은 교회가 라오디게아 교회입니다. 주님께서 세우신 교회인데도 칭찬만 들은 교회는 7중 2밖에 없었습니다. 나머지는 책망을 들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문제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이 교회들을 문 닫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계속 주님의 도구로 쓰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주의 일의 핵심적인 도구로 교회를 사용하십니다. 비록 주님의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어도 교회를 통해서 주의 일을 하십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 가슴에 첫사랑의 감격이 불타고 있습니까? 다시 묻습니다. “지금 나의 영적인 온도는 어떠한가? 뜨겁지도 차지도 앟는 미지금한 상태는 아니가” “겉으론 풍성하고 평안해 보이지만, 주님이 보실 땐 과연 어떤 평가를 받고 있을까?”를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지금 나의 모습에서 "예수의 향기가 나는가"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질문입니다. 여러분, 혹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비싼 향수가 뭔지 아십니까? 바로 샤넬 No. 5입니다. 1921년에 만들어졌지만 지금까지도 가장 많이 팔리는 향수 중 하나입니다. 이 향수는 단순한 향이 아닙니다. 마릴린 먼로가 “잘 때 샤넬 No.5만 뿌리고 잔다”고 말한 이후 전 세계 여성들의 로망이 되었죠. 하지만 여러분, 이 향수 하나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공정이 필요한지 아십니까? 일단 주요 성분인 그라스 재스민과 5월 장미를 사용합니다. 이 꽃들은 단 하루, 새벽에 손으로 따야 합니다. 수천 송이 꽃에서 단 몇 방울의 정유만 추출되기 때문에, 엄청난 시간과 인내, 수고, 희생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이 향수 한 병의 가격이 수십만 원을 넘고, 진품 중 일부는 수백만 원을 호가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귀하고 아름다운 향기가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섬김과 나눔의 향기입니다. 이 땅에 동성 교회를 세우신 이유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과 영원한 생명을 세상에 흘려보내기 위해서입니다. 교회는 세상을 닮아가서는 안 됩니다. 세상을 흉내내서도 안 됩니다. 세상을 부러워해서도 안 됩니다. 교회는 예수로만 충만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생명의 향기를 세상으로 흘려보내야 합니다. 교회는 우리가 먼저 복을 받고, 받은 그 복으로 세상을 유익하게 해야 합니다. 내가 배부르려 해서도 안 되고, 내가 만족해서도 안 됩니다.
이제 우리 교회가 할 일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 은혜 앞에 날마다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이 생활화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그토록 우리에게 말씀한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복음의 향기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제 희생을 통해 복음의 향기가 아름답게 드러나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하십시다. 오늘 우리 교회가 창립 56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앞으로의 길은 더욱 섬김으로, 나눔으로, 향기로 나아가는 교회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교회입니다. 우리가 향기입니다. 이제, 그 향기를 품고 세상으로 나아가는 교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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