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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설교문

2025 2024~2009

큰 기쁨의 소식 _ 성탄 감사 예배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24-12-25 | 조회: 227

"큰 기쁨의 좋은 소식" 2:8-14. 2024. 12/25 성탄절 설교

 

이 땅에 생명의 주로 오신 아기 예수님의 은총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충만하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우리 다 같이 인사하겠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즐겁고 기쁜 성탄절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합니다.”

아마 여러분 가운데 살아오면서 여러 가지 선물을 받았으리라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그 받은 선물 가운데 기억에 남는 선물이 있지 않습니까? 기억에 남는 선물은 비싼 선물이 아니라 마음이 담긴 선물입니다. 비싼 것은 아니더라도 마음과 정성이 담긴 선물은 받는 사람을 기쁘게 합니다. 마음이 담기지 않은 선물은 선물이 아니라 뇌물입니다. 그래서 선물을 하려고 할 때 사람들은 무엇을 선물할지를 고민하게 됩니다. 품목을 결정하면 그다음에는 가격은 얼마정도로 해야 할지, 색깔은 무슨 색으로 할지, 포장지는 무엇으로 할지, 심지어 전달은 어떻게 할지를 고민합니다. 그래서 선물하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선물 가운데 최고의 선물은 사랑하는 이에게 주는 선물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에게 주는 선물은 주는 이나 받는 이 모두를 설레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 선물을 주고받음으로 그 사랑은 더욱 깊어집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저를 너무 사랑하셔서 2천 년 전에 우리를 위하여 아주 아주 특별한 선물을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 인류의 최고의 선물이신 예수가 이 땅에 태어나심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2천 년 전 작은 나라 이스라엘 땅, 그중에서도 작은 고을인 베들레헴에서 한 아이가 탄생했다는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날 그 아이의 탄생을 지켜보던 그의 부모 외에는 어느누구도 관심 갖지 않은 볼품없는 탄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아이의 탄생은 세계 역사를 변화시키는 사건이었습니다. 바로 아기 예수의 탄생 이야기입니다.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소식을 제일 처음 들은 사람들이 바로 목자들입니다. 당시 목자들은 양이나 소를 돌보는 형편없이 무식하고 가난 하고 보잘것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노상 짐승들과 함께 지내다 보니까 옷도 아무렇게나 막 입고 다니고 먹는 것 역시 변변치 못했습니다. 옷은 언제나 땀 냄새가 진동했기 때문에 오랜만에 동네 사람들이라도 만나는 날에는 다들 코를 틀어막고 피하려고 했습니다. 목자들은 법정에서 증언을 설 수도 없게 되어 있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종교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불결한 사람들이라고 해서 성전이나 회당에 가서 예배드리는 것마저 철저히 차단이 되었던 이들에게 주의 영광이 비취고 천사가 나타났던 것입니다.

 

밤에 양을 치던 목자들에게 천사가 나타나 하늘의 소식을 전해 줍니다. 다윗의 동네에 구주가 나셨다는 소식입니다. 그리고 탄생하신 그분은 그리스도 주시라고 알려줍니다. 그러면서 이 소식이 얼마나 중요한 소식인지를 이렇게 말씀합니다.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고 말입니다. 여기서 ""은 원어로 메가스(μέγας)’입니다. 이는 단순히 크다는 의미를 넘어서, 압도적이고 영원하며 세상을 초월하는 기쁨을 뜻합니다. 이 기쁨은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기쁨과 비교할 수 없는 영적이고 영원한 기쁨입니다. 천사는 온 백성에게 미칠 소식이라고 말합니다. 이 기쁨은 특정한 사람이나 계층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한 소식입니다.

 

탄핵 정국으로 혼란스럽고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는 우리에게, 예수님의 탄생 소식은 참된 위로와 희망을 줍니다. 천사들이 예수님의 탄생을 선포하며 외친 14절의 말씀은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는 메시지입니다. 이 말씀 속에는 혼란과 두려움 속에 사는 우리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중요한 두 가지 진리가 담겨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 영광이고, 둘째는 땅에서의 평화입니다. 먼저

 

. 하나님의 영광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성경은 인간 이해에 대해 정확하게 알려주는 교과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두 가지 속성을 가지고 계십니다. 공의와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거룩함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은 죄를 간과하실 수 없고, 반드시 죄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십니다. 로마서 6:23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말씀하며, 하나님의 공의는 모든 죄에 대해 심판을 선언합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아들을 보내신 아낌없는 사랑을 보여줍니다. 3:16절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라고 하며, 하나님의 사랑은 용서와 화해의 길을 제시합니다.

십자가는 이 두 평행선이 만나는 지점입니다. 예수님은 죄 없으신 분이지만,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셨습니다. 그분의 죽음은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기 위한 완전한 희생이었습니다(이사야 53:5). 그리고 예수님의 희생은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극적으로 드러내는 사건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는 사실(로마서 5:8)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보여줍니다. 이를 위에 예수님이 탄생하신 것입니다. 공의는 죄에 대한 형벌을 예수님께 전가함으로 만족되었습니다. 사랑은 죄인을 용서하고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마음을 드러냅니다.

바울 사도는  2:14-16절에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신 주님은 우리에게 당신이 가진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십니다. 엇보다 우리에게 독생자 외아들을 주셨습니. 그분 앞에 나아갈 수 없는 죄인인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화목제로 내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정결케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우리에게 다가오신 이 땅에 오신 예수의 탄생은 회복과 화해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된는 것입니다.

 

.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평화라고 말씀했는데 성경이 말하는 평화란 무엇입니까? 천사들은 하늘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라고 찬양하며, 이어서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평화를 선포합니다. 이는 예수님의 탄생이 단지 하늘의 일이 아니라, 땅에 있는 사람들과 깊이 연결된 사건임을 보여줍니다. 나님의 영광이 예수님을 통해 하늘에서 땅으로 임하였고, 그 결과로 땅에는 평화가 주어졌습니다. 이는 하늘과 땅을 잇는 구속사의 중요한 순간입니다.

 

여기 기뻐하심을 입은 자들이라는 표현은 원어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속한 자들입니다. 이는 단순히 모든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선택을 받은 자들, 즉 하나님께로 돌아오고자 하는 자들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구속 계획에 따라 예수님을 통해 평화를 누릴 자들입니다.

 

성경에서 평화’(샬롬)는 단순히 전쟁이나 갈등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서 누리는 전인적이고 영적인 평안과 화목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죄의 장벽이 허물어지고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5:1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라고 합니다. 이제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렸고 하나님과 화평의 관계가 되었고 그 화평의 관계를 누리자, enjoy하자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아무나 만날 수가 없고, 특별히 죄인은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죄인에서 의인으로 바꾸시고 하나님과 우리와의 막힌 관계를 여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누구든지 하나님과 함께 화평을 얻을 수 있는 관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화평을 누리는 삶이라는 것은 적극적인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만 주어진 특권입니다. 누린다라는 표현은 특권입니다.

 

특권은 누가 누릴까요? 특권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이 누리는 것입니다. 만약 특권이 있는데도 특권을 누리지 못한다면 특권이 없는 것과 똑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돈이 많지 않아서 어렵게 항공료를 지불하고 첫 해외여행을 가게 되었습니다. 돈이 많지 않아 여비를 아끼고 있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기내식이 나오자 돈을 주고 사 먹을 수는 없어 두 끼를 참고 내리고 나서야 항공료에 다 포함이 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어진 특권을 알지 못하면 특권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청와대에 드나들 수 있는 특권을 얻었다면, 그것도 언제든지 들어가면 만날 수 있다면 그것은 특권입니다.

 

이것을 누리지 못하면 너무 억울한 것입니다. 성탄은 새로운 시대가 예수님의 탄생으로 말미암아 열렸다는 것입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깨어진 관계, 단절된 관계를 여는, 하나님과의 화평의 관계를 누릴 수 있다는 축복의 이야기. 하나님과의 단절로 인한 비극의 크기를 아는 사람은 이 죄사함의 은총과 그 이후 자유함이 어떤 것인지를 알 때 얼마나 흥분이 일어나는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과의 교제를 마음껏 즐기는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이제 성탄은 우리로 하여금 담대한 신앙을 가지게 됩니다. 히브리서 4 16절에 보면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날마다 필요합니다.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 없는 순간이 한순간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보니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라 합니다.

 

이 말씀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평화와 참된 기쁨을 가졌나요?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을 놓고 기뻐 춤을 추며 그를 영접했습니까? 아닙니다. 기뻐하고 영접한 사람은 도대체 몇 명이나 되었습니까? 너무나 소수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누가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을 기뻐하며 영접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기록된 성탄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사람의 숫자는 불과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소수입니다. 성탄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을 보세요?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기뻐하고 영접할 수 있습니까? 이 세상에서 천대받은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에서 무시당한 사람들입니다. 가난한 자, 짓밟힌 자, 실패한 자, 병든 자, 죄인으로 몰린 자, 이런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가 오심을 기뻐했습니다. 바로 이런 자들이 예수님의 첫 번째 탄생을 믿는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무거운 마음으로 성탄절 예배를 드립니다. 2024년 한국의 교수들이 선정한 사자성어는 '전전긍긍(戰戰兢兢)'입니다. 이 표현은 '몹시 두려워하며 조심함'을 의미하며, 올해의 사회적 불안과 혼란을 반영하고 있지 않습니까? 금 사회 전반에 걸친 불안과 긴장 상태를 표현합니다. 그러나 임마누엘로 우리에게 오신 주님은 우리를 결코 버리지도 놓치지도 포기하지도 않으시고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의 이 땅에 오심은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영광의 보좌를 내려놓으시고 우리에게 구원의 선물을 주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14절의 말씀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은 단지 2000년 전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날의 혼란과 두려움 속에서도 우리에게 소망을 주는 복음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오셨고, 우리에게 평화를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 기쁜 소식을 붙들고, 우리의 마음과 삶 속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님의 평화를 실천하며 살아갑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에게 주어진 이 큰 기쁨의 소식이 우리의 힘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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