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사회학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요즘 이 시대는 암보다 더 무서운 질병을 앓고 있다. 그것은 곧 ‘감사 불감증’이란 이름의 병이다.” 아주 정확한 지적입니다. 오늘 이 시대가 불행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게 풍부해야만 행복한 게 아닙니다. 행복은 주어진 상황에서 감사할 때 찾아옵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하고 누린다 하더라도 감사하는 마음이 없으면 불행한 인생입니다. 풍부해서 행복한 게 아니라, 감사함으로 행복해지는 겁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잘 사네 못 사네 해도 우리 사회가 얼마나 풍요로워졌습니까? 거리마다 자동차가 너무 많아 문제입니다. 기름진 음식으로 살이 너무 쪄서 문제입니다.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자가용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됐습니까? 30여 년 전만 해도 마른 사람이 많아서 오죽하면 배가 나온 사람을 배 사장이라고 불렀겠습니까? 요즘은 역전되어서 뱃살이 있으면 핀잔받기 일쑤입니다.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 이승만 박사가 살던 ‘이화장’에 가 보면 그때 대통령보다 내가 더 잘 먹고 잘 입고 사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런데 그 시절에 비해 지금 얼마나 행복해졌나? 따져보면 행복하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 힘듭니다. 왜 그럴까? 감사가 줄어서 그렇습니다. 감사 대신 불만 불평을 일삼는 시대가 되어서 그렇습니다. 우리가 깨달아야 할 사실이 바로 그겁니다. “이 시대의 문제는 감사를 잃어버린 것이다! 나 자신의 문제도 감사를 잃어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무조건 많은 것을 추구할 게 아니라 감사의 마음을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진정한 의미에서 행복한 인생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본문이 기록된 데살로니가전서는 사도 바울이 2차 선교여행 중에 세운 데살로니가교회의 성도들에게 쓴 편지입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을 통하여 아직까지 신앙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감사에 대한 교훈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당시 데살로니가 교회는 환난의 한복판에 서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편지에는 환난이나 고난이라는 단어가 유난히 자주 등장합니다. 1:6에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 많은 환난 속에 있었다. 2:2에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2:14에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받음과 같이” 3:7에 “모든 궁핍과 환난 가운데서”
우리는 이 구절을 통해 당시 데살로니가 교회가 당하고 있는 어려움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그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여러분, 범사에 감사하십시오. 오늘 여러분이 처한 고난의 환경 속에서도 이 역경의 환경 가운데서도 감사하십시오.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내 사정, 내 형편이 도무지 감사할 수 없는 처지에서 감사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감사해야 할 삶의 이유가 있습니다. 감사의 삶! 은 바로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다 같이 본문을 보겠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이 말의 뜻은 우리는 어떤 상황, 어떤 형편에서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감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세 가지 시제가 들어 있습니다.
첫째로, 지금까지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하라는 말입니다.
여기 바울이 범사에 감사하라는 것은 우리는 상황에 너무 민감하기 때문에 이 어려운 삶속에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를 헤아려보셨습니까? 시편 103:2절에 보면,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것은 다윗의 고백입니다. 다윗은 지난 날 동안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베풀어주신 은혜가 얼마나 많았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일일이 다 열거할 수는 없을 정도로 많은 은총을 받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 스스로에게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무려 430년 동안 애굽에서 종노릇하던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출애굽 이후에는 광야 40년 동안 보호하시고 인도해 주셨습니다. 필요한 것을 넉넉히 공급해주셨습니다. 신8:3-4절을 보면 이스라엘을 만나로 먹여주시고 , 입을 옷과 신을 신발을 공급해주셨습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가 아닙니까? 그러나 우리는 너무 쉽게 하나님이 베푸신 그 은혜와 사랑을 잊고 살 때가 너무 많이 있습니다. 그럴 때 혹시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릴까봐 조심하라는 겁니다. 내려가서 12-14절에 보면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또 네 우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 …….” 17절. “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인간은 참 이상합니다. 하나님이 은혜 베푸셔서 배불러지면 더 감사해야 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오히려 교만해지고 배은망덕해지기 쉽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자기 힘으로 사는 것처럼 착각합니다. 인간의 죄성이 바로 이겁니다. 이기심과 자기중심주의입니다. 롬1:21절에 보면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 ” 말세가 되면 이런 못된 인간성이 더욱 심각해진다고 성경은 경고합니다. 딤후3:1-2절에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 ”
따라서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감사는 환경 조건이 좋아서 풍부해서 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악한 인간성으로는 아무리 풍부해져도 감사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풍부해질수록 배은망덕하기 쉽습니다. 호13:6절에 보면 “저희가 먹이운 대로 배부르며 배부름으로 마음이 교만하며 이로 인하여 나를 잊었느니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배부를수록 배은망덕해지는 인간의 실상을 지적합니다. 잠언 30장 아굴의 기도를 보면, 아굴이 염려하는 게 바로 그겁니다. 혹시라도 물질이 풍부해져서 하나님은 배반하게 될까봐 염려합니다.
잠30:8-9절에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 ”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의 본성 상 감사치 못할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고백해야 됩니다. 오직 신앙이 있어야 감사가 가능해집니다. 신앙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분의 은혜를 인정하는 게 아닙니까? 그러므로 ‘신앙의 본질’이 곧 ‘감사’입니다.
둘째로, 지금의 상황에 감사하라는 말입니다.
“감사는 받은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은혜를 깨닫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삶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환경을 통해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입니다. 환경이 좋을 때는 모든 것이 희망적으로 보이지만 상황이 달라질 때는 그 상황 앞에 우리의 삶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우리를 둘러싼 상황 안에서만 인생을 바라볼 때 우리는 답답함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꼭 이렇게 살아야 하나?’ “왜 이것 밖에 안 되지?” 하는 가슴을 짓누르는 아픔도 있습니다. 고통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안에서 인생을 바라볼 때는 다릅니다.
사도바울을 보십시오. 한 때 내 것으로 차 있었고, 내 노력, 내 의지로 가득 차 있어 예수그리스도를 바라볼 수 없었던 바울도 다메섹 도상에서 내 운명의 구원자가 되시는 예수를 만나게 됩니다. 거기서 그는 주님 앞에 거꾸러집니다. 그리고 이제까지 자신이 쏟았던 모든 것들이 예수그리스도를 만난 그 순간부터 쓰레기처럼 여겨지기 시작합니다. 마치 아름다운 보석들이 각각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낼 때 갑자기 영롱하고 찬란한 다이아몬드가 들어오자, 이제까지 광채를 빛내던 모든 보석이 빛을 잃은 것과 같습니다. 바울은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변함없으신 하나님의 사랑을 보게 됩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무엇이 참된 인생인가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그는 삶의 새로운 목표를 발견합니다. 도무지 견딜 수 없는 기쁨. 뜨거운 감격, 가슴 깊은 곳에 저미도록 스며드는 그 하나님의 사랑 앞에 감사의 고백이 터져 나옵니다. 이것이야말로 그리스도안에서만 알 수 있는 넘치는 은혜요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어떤 자리에서도 감사합니다.
자기를 핍박하는 자들을 위해서도 감사합니다.
감옥에서 저미어오는 매 맞음의 통증을 끌어안으면서도 감사합니다.
살 소망이 끊어진 자리에서도, 지금의 고난은 장차 누릴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며 감사합니다.
그는 신약 13서신을 기록할 때마다 하나님 앞에, 성도들에게 감사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이 전천후의 감사는 바울의 삶을 능력 있는 삶으로 승리하는 삶으로 이끌었습니다.
셋째로, 섭리를 믿고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롬8:28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 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환영할 수 없는 오늘의 상황, 기뻐할 수 없는 오늘의 고통, 감사할 수 없는 오늘의 아픔과 상처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것은 마침내 합력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야 말 것이다. 이것이 바울의 인생 한복판에 만난 어떤 위기와 어려움도 넉넉하게 이겨낼 수 있는 힘이었고, 그러기에 미래에 대한 불안이 아닌 진정한 감사를 할 수가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고통에는 뜻이 있습니다. 믿으십니까? 고난 속에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 우연은 없습니다. 우연 속에는 필연이 있고 그 필연 속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면, 참새 한 마리도 그 분의 허락 없이는 떨어질 수 없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우리의 머리카락까지도 하나님께서 세신 바 되었다는 사실을 믿으십니까? 여러분이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이 있습니다. 조국의 어려움, 또 가정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고통과 오늘의 역경 중에서도 하나님은 당신의 뜻과 당신의 계획을 이루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을 붙잡을 수만 있다면, 이 소망만 잃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떤 자리에서도 감사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바울은 이 진정한 감사. 범사에 감사하는 이 삶이 그리스도안에서 발견되어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8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 다시 말해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범사를 바라볼 때 모든 일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감사하라’는 단어가 명령어로 쓰였다는 사실에 주의하십시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부모를 공경하라. 이웃에게 거짓증거하지 말라’와 같은 모든 계명이 하나님의 명령인 것처럼 명령은 순종되어야 합니다.
감사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이라면 감사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것이 아니라 반드시 감사해야 합니다. 날마다 감사해야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바울은 감사하나는 명령을 통해 우리에게 의지적 순종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감사하는 삶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삶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정말 감사하는 삶을 살려면 육신의 느낌에 따라 인생을 살아서는 안 됩니다. 느낌대로만 산다면 감사하지 못할 조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올 한해도 많은 사고사건 속에 우리가 살아가지만, 한번 저 공중 나는 새와 들에 맺힌 열매들을 보십시오. 공중의 새들이 먹고 살기 위해 농부처럼 농사짓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먹이시고, 야생화들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기 위해 옷을 지어 입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입히시기에 저들은 염려 없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새보다 소중히 여기시고 야생화보다 더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새들을 먹이신 하나님께서 새보다 소중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결코 굶기시지 않으실 것을 믿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야생화보다 더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결코 헐벗게 버려두지 않으실 것을 믿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 삼으시고 그 무엇보다 그 누구보다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우리를 보살펴주셨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앞으로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살펴 주실 것을 믿어야 하겠습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어떤 일을 당할 때도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지키시고 우리를 인도해 주실 것을 믿고 감사해야 하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동성의 여러분!
이제 추수감사주일을 준비하면서 지난 1년을 돌아보십시오. 저는 감사는 기적의 씨앗이라는 말씀을 이 강단에서 수없이 말씀을 드렸습니다. 감사는 억지로 해도 좋습니다. 저의 경험에 결코 손해가 없습니다. 그 감사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시100:4절에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왜 성경은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라고 강조하셨을까요? 감사의 문을 통과하는 자만이 주님의 잔치를 맛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감사의 문을 통과한 자에게만 주시는 놀라운 축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동성의 여러분! 지나온 한해를 돌이켜 보면 지금까지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기쁜 일도 있고, 힘들고 어려운 일도 있습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오늘에 이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영광 돌리시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이 시간 우리 이렇게 한번 기도하지 않겠습니까? 18세기 영국의 시인 조지 허버트가 이런 아름다운 기도시를 남겼습니다. "하나님! 당신은 내게 너무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이제 한 가지만 더 주십시오. 감사하는 마음을!" 오늘 우리의 기도 제목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부디 이 감사의 계절에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묵상함으로 감사를 회복하시고 행복한 인생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