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기쁜 소식 - 예수 탄생 눅2:8-14. 2014년 12월14일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14-12-14 |
조회: 1402
이어령 교수가 쓴 『지성에서 영성으로』란 책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분이 예수를 만나고 나서 쓴 정말 감동이 있는 책인데 여기에 보면 미국의 유명한 신문사인 ‘워싱턴 포스트’에서 재미있는 실험을 하나가 소개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정말로 음악을 알아듣는 귀가 있나실험한 것입니다.
세계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인 조슈아 벨(Joshua Bell)에게 거리의 악사처럼 허름한 옷을 입히고 3백만 달러(35억 원)짜리 최고의 명품 바이올린인 스트라디바리우스를 들고 워싱턴 데팡스 지하철역에서 연주를 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 역은 지식인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다니는 곳입니다. 처음 그 실험을 계획했을 때에 약간의 걱정스러운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조슈아 벨을 알아보고 그에게 사인해 달라고 몰려들면 어찌하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조슈아 벨의 연주회가 있을 때면 수백만 원에 호가하는 입장권을 사야 들어갈 정도로 그는 유명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침 7시부터 8시 반까지 한 시간 반 동안 조슈아 벨이 허름한 옷을 입고 지하철역에서 연주를 하는데, 그 수많은 사람들이 그 앞을 지나가면서도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가 연주하는 그 아름다운 음악을 귀담아 듣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합니다. 다들 휴대폰으로 통화하느라 정신이 없고, 바삐 출근을 하느라 걸음을 멈추어 서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역 한 모퉁이에서 구두를 닦던 구두닦이 한 사람만이 그 음악을 알아들었다고 합니다. 그 구두닦이도 그가 조슈아 벨인지 알아보진 못했고, 그저 특별한 사람이구나 하고 느꼈을 뿐입니다.
거대한 연주홀에서 연주회를 개최했다면 그 때 그곳을 지나가던 사람들 가운데 많은 수가 몇 백만 원씩 하는 입장권을 샀을 것입니다. 그리고 연주회를 마쳤을 때에는 그에게 사인을 받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섰을 것입니다. 그런데 허름한 옷을 입고 지하철역에서 볼품없는 모습으로 연주를 하니까 아무도 그의 음악에 귀를 기울여주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비록 볼품없는 옷을 입었다 하더라도 조슈아 벨은 조슈아 벨입니다. 화려한 연주홀이 아닌 연주하기에는 초라한 지하철역이라 하더라도 그가 연주한 음악은 세계 최고의 음악입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의 음악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을까요? 무지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시면 인류의 구원자로 오신 이 메시야의 탄생에 누가 초대를 받았습니까? 당시 그 나라를 통치하던 정치적 실세인 헤롯입니까? 아니면 영적 지도자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율법과 제사를 통해 영향력을 끼쳤던 대제사장입니까? 아니면 평생 성경에만 파묻혀 살았던 서기관들입니까? 오늘 우리는 우리 상식에 커다랗게 빗나간 광경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의외로 당신의 그 영광을 당신의 그 탄생의 거룩한 신비를 가장 천한 직업으로 여겨졌던 밤의 양떼들을 밤새 지켜주는 것을 업으로 삼던 목자들, 제 이름 석자 하나 제제대로 쓰지 못하는 무식자들이고, 성전에 가서 예배를 드릴 때도 바깥마당에서 서성거리다 돌아와야 할 목자들에게 나타내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오신 성탄의 소식을 듣고 기뻐하며 영접한 사람의 숫자는 그 당시 불과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소수입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이 행한 성탄의 자세입니다. 당시 예수님을 기뻐하고 영접했던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천대받은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에서 무시당한 사람들입니다. 가난한 자, 짓밟힌 자, 실패한 자, 병든 자, 죄인으로 몰린 자, 이런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가 오심을 기뻐했습니다.
여기 8절에 보십시오. ‘그 지경에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누가 나옵니까? ‘목자들’입니다. 그들은 제사장이 아닙니다. 당시 성경을 연구하는 서기관도 아니요 구별된 사람들이라 자처하며 경건을 쫓아 살았던 바리새인도 아닙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가장 멸시당하고 소외받던 목자들입니다. 이들은 예루살렘이나 도심지에서 멀리 떨어진 광야라든지 산지 또는 벌판에서 양이나 치면서 야영하며 살던 사람들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진행되는 각종 예배모임에는 참석조차 할 수 없었고 심지어 법정에서 증 인 노릇할 권리 마져 박탈당할 만큼 사람들은 이들의 존재에 대해서 철저하게 무시하고 경멸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정말 깊은 밤에 아무도 없는 들녘에 양떼를 지키고 있던 이 목자들에게 천사들이 한 가지 소식을 들려줍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여기 10절을 보십시오.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여기 '큰 기쁨'은 헬라원어로 '카란 메가렌'입니다. 메가톤 급의 기쁜 소식이라는 말이지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다는 소식은 좋은 소식인데 메가톤 급의 어마어마한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큰 기쁨의 소식’을 전하는 한밤의 광경을 보십시오. 성경에 "허다한 천군 천사" 라고 했는데, 하늘의 천군 천사의 대 합창이 울려 퍼졌습니다. 그 수가 수천 수만이었을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밤하늘의 뿌려놓은 듯한 은하수처럼 지금 온 땅에 천군 천사들이 모두가 잠든 깊은 밤중에 캐롤을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도 성가대가 크리스마스 칸타타를 하지만, 천사가 합창한 그 노래는 정말 장엄하기 이를 데가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의 탄생이 왜 이처럼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까? 그 이유는 11절에 보시면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구세주로 오셨습니다. 마1:21절에는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죄에서 구원을 받는다는 게 얼마나 엄청난 지 아십니까? 제 작년 우리나라가 구제역 때문에 얼마나 걱정을 했습니까? ‘구제역’라는 균이 어느 한 농가에 퍼지면 그 농가의 소나 돼지는 모조리 땅에 파묻어 죽입니다. 그 옆 마을, 인근지역 수 킬로미터 안에 있는 소난 돼지는 모두 죽임을 당하고, 흙에 다 파묻습니다. 그 균은 사람을 통해, 자동차를 통해, 바람을 통해 전국적으로 삽시간에 퍼지게 때문에 살아있는 생명을 아까워도 다 죽입니다. 살 처분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청정 지역으로 일컫는 안동의 한 농가는 자식처럼 길러오던 멀쩡한 소들을 손 한번 써보지 못한 채 다 땅에 묻고 망연자실한 모습이 보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구제역이 심각하지만 우리 인간의 죄는 이런 구제역보다 더 무섭습니다. 롬3:23에 보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다" 그리고 6:23에 보면 '죄의 삯은 사망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우리 인간을 보시고 구원받아야 될 존재로 선언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죄인이라는 말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다는 말씀에 의하면 우리 모두가 죄인입니다. 하나님은 거침없이 이 사실을 선언합니다. 그리고 그 죄의 값은 반드시 심판을 받게 됩니다. 따라서 이 심판을 면하려면 구원을 받아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구원받으라고 하십니다.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신 주님은 우리에게 당신이 가진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십니다. 무엇보다 우리에게 독생자 외아들을 주셨습니다. 그분 앞에 나아 수 없는 죄인인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화목제로 내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정결케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롬8:32절에서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라고 말했습니다. 당신의 아들을 십자가에서 제물로 삼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2. 목자들에게 기쁜 소식이라고 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겠다는 것입니다. 마 1:23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성탄 사건은 한 마디로 임마누엘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이제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게 된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출 32장을 보면 소위 “금송아지 사건”이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체결하신 뒤 모세를 시내산으로 부르셨습니다. 40일을 머무르게 하시면서 모세에게 율법을 전수하고 계셨습니다. 그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처구니없게도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기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저들을 당장 진멸하시겠다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 모세가 목숨을 걸고 중보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일단 화를 가라앉히셨습니다. 모세가 산에서 내려와 사태를 수습하고 다시 중보기도를 드렸습니다. 이스라엘의 죄를 용서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장 죄를 벌하지는 않으시겠다고 집행유예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중대선언을 하셨습니다. 출 33:3입니다. “너희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려니와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이제부터 가나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 혼자서 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가지 않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 말씀에 백성들이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광야를 자기들 혼자서 갈 수 있겠습니까?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에 구름 기둥도 불기둥도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에 만나도 내렸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에 반석에서 물도 나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겁이 덜컥 났습니다. 그래서 출 33:4을 보면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백성이 이 황송한 말씀을 듣고 슬퍼하여 한 사람도 그 몸을 단장하지 아니하니” 저들이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으실 것을 생각하니 너무 두려웠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인생의 근본 문제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아니하시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혼자 저 광야 같은 인생길을 걷는 것입니다. 혼자서 인생의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것입니다.
왜 사람들이 이처럼 온갖 것을 누리면서도 불안하고 두려워하면 염려의 늪에서 허덕입니까? 요즘 박근혜 대통령을 보세요. 무슨 말을 해도 사람들이 믿지 않습니다.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전직 대통령들의 한결 같은 이야기는 청와대에 있을 때가 제일 힘들었다고 합니다. 너무너무 힘들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통령 해도 짐이고 인기가 있어도 짐이며, 인생에 짐 안지는 사람이 없습니다. 결혼하면 짐이 없습니까? 결혼해도 짐 집니다. 자식 낳으면 짐이 없습니까? 자식도 짐입니다.
어떻게 보면, 짐 아닌 건 하나도 없는 게 이 세상입니다. 그래서 요사이 모두 이걸 아니까 결혼을 안 할려고 합니다. 그럼 안하면 짐이 없습니까? 안 해도 짐입니다. 혼자 사는 것도 짐입니다. 자식 없어도 짐입니다. 외로운 짐, 허무의 짐, 죄악의 짐, 짐 아닌 게 어디 있습니까? 먹고 사는 것, 자기혼자 먹는 것도 짐입니다. 저가 자취해 보니 설거지 하는 것도 보통 짐이 아닙니다. 밥 먹을 때는 좋은데 설거지는 도무지 하기 싫습니다.
그래서 남학생들 자취하는 방에 가보면 이틀, 사흘 설거지를 그대로 가만히 놔두는 애들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하면 짐이기 때문입니다. 이 짐을 벗겨줄 이가 어디에 있습니까? 일생이 모두가 짐인데, 부모는 부모의 짐, 자식은 자식의 짐, 공부하는 사람은 공부도 짐입니다. 모두 다 짐인데 이 짐을 벗겨줄 이가 누구십니까? 오늘 현대인들은 이 짐을 벗으려고 여행도 해보고 좋은 곳에 가서 쉬려고도 하며, 그런 걸 많이 찾지만은 세계 어디에도 인생이 쉴 곳은 없습니다. 쉬어도 잠깐이지, 문제를 가지고 쉬는 거지 문제를 활짝 벗고 쉴 수 있는 곳은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큰 기쁨의 소식이 뭡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겠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있어도 그렇게 좋은 데 이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그 분이 나와 함께 하겠다니 눈이 번쩍 뜨여지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이 것이 바로 성탄의 의미입니다. 의미 속에는 두 가지 뜻이 담겨 있습니다. 첫째는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히13:5절의 말씀에 보면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하십니다. 여기 과연이라는 말은 영어로는 ‘never’입니다. '결코'라는 말입니다. 또 하나는 언제나 우리를 보호하시고 도우시겠다는 말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져야할 짐을 모두 다 져주실 뿐만 아니라 내게 주어진 이 모든 축복의 짐을 감당할 수 있도록 늘 도와주십니다. 저는 우리 아버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아버지를 제가 모셨습니다. 25년을 혼자 계신 어른을 모셨습니다. 혼자 계신 어른을 모시는 게 쉬운 게 아닙니다. 한번 해 보십시오. 보통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도 저는 우리 어머니를 잘 모셨습니다. 제가 동성 교회로 이사를 와서 여기 사택에 들어오기 전까지 10번을 이사했습니다.
조그마한 방에 우리 아이 셋, 우리 부부 둘, 어머니와 함께 다 집안에 오글오글 하면서 같이 방 두 세 칸에 살았으니 얼마나 복잡합니까? 그러나 교회를 섬기고 같이 한 집에 살아도 짐이 안 됩니다. 그렇게 기쁘게 삽니다. 저희 어머니는 2년 전에 돌아가셨는데, 너무 허전합니다. 저녁마다 예배 마치고 밤늦게 들어가면 어머니 생각이 얼마나 나는지 모릅니다. 좀 더 오래 살면 이렇게 좋은 예수가 있는데 하는 생각이 미치면 그냥 눈물이 납니다. 아내가 고생을 많이 했죠? 아이들 돌보랴, 어머니 수발들랴 그래도 예수 안에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 지 모릅니다.
오늘 현대인들은 가정이 짐이 되어 자꾸 뛰쳐나가고 가정을 무너뜨리며, 남편이 짐이 되어 남편과 불화하고 자식이 짐 되어 자식 욕하며, 서로가 다 힘들어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님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없이 내가 짐을 짊어지니 모두 다 힘드는 것입니다. 피곤해 합니다. 현대인들이 얼마나 성격이 강퍅하고 불평불만이 많은지 모릅니다. 짐이 없는데도 모두 다 못살아가지고, 자살하는 사람이 작년에도 1300명이 죽었습니다.
왜 못살아 그러는지 이유를 알 수가 없습니다. 살고 싶어 해야지 왜 죽습니까? 모두 가정을 뛰쳐나갑니다. 세상이 싫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싫어하고 일이 싫어 일을 안 할려고 그럽니다. 모두 모두 이렇게 피곤해 그럽니다. 온갖 부정된 생각을 갖고 살아가니 사회가 정상이 아닙니다. 이걸 어떻게 회복해야 됩니까? 예수 앞에 나와야 됩니다. 할렐루야! 교회 앞에 나와야 됩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야 됩니다. 짐을 모두 다 맡기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의 탄생 소리를 듣고 찾아온 목자들을 한번 보십시오. 그 당시에 목자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가장 천민 중에 하나였습니다. 남의 양떼들을 밤새 지켜 주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입니다. 제 이름 석자 하나 제대로 쓰지 못하는 무식자들이요, 성전에 가서 예배를 드릴 때도 바깥 마당에서 서성거리다 돌아와야 하는 천민들입니다. 나중에 예수님의 탄생을 사람들 앞에 자랑하고 좋아하던 시므온이라고 하던 선지자와 안나라고 하는 선지자를 한번 보십시오. 그들은 다 초라한 사람들이요, 평생 외롭게 산 사람들입니다. 안나 같은 사람은 결혼하고 7년 만에 과부 된 후고 84년 동안 아무 혈육 없이 그저 성전에서 날마다 심부름이나 해 주고 기도나 하고 먹을 것 없으면 금식이나 하는 그런 여자였습니다.
자, 이런 몇몇 사람들이 예수님이 세상에 오실 때 환영하고 기뻐했다 그 말입니다. 모두가 어떤 사람들입니까? 세상적으로 말하면 천대받는 사람이요, 무시당하기 쉬운 사람들이요, 세상에 무슨 소망이나 자랑할 만한 것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기뻐했습니다. 여러분! 이 분들에게 한 가지 공통점은 영적으로 깨어있는 상태에서 모두 계시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동방박사들은 별을 통해서 목자들은 천사를 통해서, 두 노인은 성령을 통해서 계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 아들 메시아가 이 땅에 태어났는데, 그것도 마굿간에서 태어났는데 거기에 징조도 없고 계시도 없이 태어나셨겠습니까? 여기 등장한 이 분들은 하나같이 하나님 계시를 받고 그것을 순종함으로 이 축복을 누렸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탄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입니다. 하나님과 멀어지게 했던 죄의 담이 헐어지고, 이제 하나님과 함께 하는 그 은혜 앞에 내 마음 속에는 세상이 주지 못하는 평안이 생수처럼 심령 안에 가득차 넘쳐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영광 안에 선 우리들이 목자처럼 예배의 즐거움이 일어납니다. 동방 박사는 예물을 가져 왔지만, 이들에게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래도 기쁨이 가득합니다. 저 하늘에 천군 천사들의 소리를 들어 보세요!!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평화로다!!”
지난 연말 우리가 먹을 쌀을 이웃에게 나누어 줄 수 있었다는 것은 너무나 귀한 일입니다.성탄의 기쁨을 아는 자의 삶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실로암 대학을 통해서 장애인들을 돕고 함께 예배드린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모릅니다. 장애의 아픔을 아시나요? 통계에 의하면 장애인을 가진 부모는 95~99%가 자기 자녀가 먼저 죽기를 바란다고 합니다. 또 빨리 죽기를 바란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부모가 먼저 죽으면 아이가 남에게 천덕꾸러기가 되면 어떡할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모가 죄책감을 갖고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쩔 수가 없습니다.
이럴 때에 교회가 그들의 필요를 알고, 도와주고 사랑한다면 그들이 무엇을 느끼겠습니까? 인간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데 당신이 하나님을 인해서 이 일을 하는 것을 보면, 당신은 정말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라고 말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교회가 그런 일을 할 때, 정말 이 교회는 진정 하나님의 교회다 라는 말을 듣게 되지 않겠습니까? 또 등대 교회를 섬길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정말 외롭고 고독하고 어려운 노숙인들을 돌아봅니다. 그들 생애가 아름답게 일어 설 수 있도록 사랑의 쌀을 나눔이 기쁘지 않습니까? 어떤 분이 쌀 100포를 하겠다, 얼마를 하겠다고 하는 데 눈물이 납니다. 이 모든 일들을 통해서, 정말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아무도 가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수익 사업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참여하여 사랑하고 돕는다면 그들이 우리를 향해서 뭐라고 이야기하겠습니까? 정말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까? 이 성탄이 그런 은혜가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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