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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설교문

2025 2024~2009

감사- 불평 제초기 엡 5:20-21. 2014년 11월 9일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14-11-09 | 조회: 1478
이 11월은 감사의 달입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감사하는 삶이 얼마나 소중한가는 이미 여러분이 잘 알 것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 말씀은 매우 강한 어조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라." 여러분이나 저나 말씀을 읽으면 제일 먼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범사에'라는 말과 '항상'이라는 말입니다. 감사하라고 하는 말에 '범사'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으면 우리는 왠지 모르게 부담을 느낍니다. 감사하라는 말 앞에 '항상'이라는 수식어가 있으면 기가 죽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범사'라는 말은 어떤 형편에 있든지, 어떤 일을 당하든지 무조건 감사하라는 뜻입니다. '항상'이라는 말은 시종일관, 어떤 상황을 만나도 변함없이 감사하라는 뜻입니다.

사람이 좋은 일에 감사하는 것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좋지 못한 일에 감사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성공할 때야 어느 정도 감사할 수 있지만, 실패할 때 진정한 감사를 드리기란 정말 힘듭니다. 이익을 많이 남겼을 때는 저절로 감사가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막대한 손해를 입었는데도 그 실패 앞에 감사가 일어난다는 것은 감사하는 너무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고난과 견딜 수 없는 상황 앞에서도 오히려 감사를 드린 믿음의 선배들이 참 많습니다. 사도 바울이 어디에서 감사를 드렸습니까? 감옥입니다. 최악의 공간인 감옥에서 최고의 감사를 드린 것입니다. 다니엘도 꼼짝없이 사자 굴에 던져지는 최악의 상황에서 오히려 감사기도를 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욥을 보세요. 도저히 감사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 최고의 감사를 드린 욥의 모습은 여전히 풍성한 감사를 드리지 못하는 우리에게 크나큰 도전이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신앙인에게 감사가 없으면, 가장 현저하게 나타나는 게 바로 불평과 불만입니다. 만족이 없습니다. 남들보다 더 많이 기지고도 남들보다 더 우월한 삶을 살아도 늘 삶이 메말라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인이 감사가 마르면 믿음의 풍요로움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오늘 제목이 뭐죠? 감사 - 불평 제초기

요즘 환경오염으로 인해 농부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래서 농사를 지을 때 필수적인 것이 바로 제초제입니다. 제초제란 작물의 곁에서 자라나 양분을 빼앗고 해충과 병균의 중간기주가 되어 병충해의 근원이 되는 잡초. 이 잡초를 조금 더 손쉽게 없애고자 만들어진 것이 바로 제초제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세요. 제초제의 역할은 ‘죽이면서 살리는 것’이 아닙니까? 참 어렵죠? 나쁜 것을 죽이고 좋은 것을 살리는 것, 이거 쉽지 않죠?

“내 마음의 정원” 이라는 책에 보면 저자는 사람의 마음을 정원에 비유했습니다. 현대인들에게 정원이 친숙해서 그렇지 사실 이것도 밭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을 현대어로 바꾸어 표현했을 뿐입니다. 여러분, 화단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요즘의 자그마한 밭뙈기를 생각하셔도 됩니다. 상추를 심어 거두어 먹으려던 그 작은 밭도 씨 뿌려 놓고 3개월만 방치하면 어떤 일이 생깁니까? 온갖 잡초들이 자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제초제를 뿌려서 잡초를 제거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 인생도 예외가 아닙니다.

내 인생의 잡초를 뽑지 않고서는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그 풍성함을 누리며 살아가기가 힘이 듭니다. 그 신앙의 잡초, 불평이라든지, 인색함, 그리고 - 이 잡초를 제거하는 것이 바로 감사입니다. 요즘 전 세계가 공포에 떠는 에볼라 라는 바이러스가 있습니다. 면역체계가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치명적입니다. 이 병을 치료하다 지금까지 감염되어 죽은 의사 간호사들이 200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우리 신앙생활에서도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온갖 죄를 죽이는 것이 예수의 보혈이요, 그 보혈을 마신 자는 감사라는 면역 체계가 형성이 되어 집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 감사가 우리 삶에 체질화 될 수가 있겠습니까?




첫째로,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왜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이름으로'라는 말을 '때문에'로 바꾸어도 전혀 잘못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범사에 감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 한분만으로 범사에 감사하고 항상 감사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고 지금 말씀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 "하나님 이것은 너무 비현실적인 말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이런 식으로 변명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우리가 어떻게 감사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을 한번 여러분 마음에 되새겨 보십시오. 그분이 누굽니까?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가 우리를 너무 사랑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나의 죄를 짊어지고 저 무지하고 잔인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흘 만에 그를 죽음에서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고, 그의 옷자락을 믿음으로 붙드는 사람은 어떤 죄를 범했든지 어떤 과거를 가졌든지 하나님께서 그 모든 죄를 다 용서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자, 그렇다면 이 예수님 한분 때문에 범사에 감사할 수 있지 않습니까? 세상 사람이 가지고 즐기는 것이 나에게 없다 할지라도 나에게 예수님이 계신다는 그 이유 하나 만으로도 범사에 감사하고 항상 감사할 수 있지 않을까요?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바울이 이 편지를 쓰고 있었던 현장은 음습한 감옥입니다. 호텔 방처럼 시설이 갖추어진 편안한 방이 아니라, 내일이면 희망이 열릴 것을 기대하는 그런 안락한 현장이 아닙니다. 이제 자신에게 어떤 불이익이 돌아올지, 아니면 죽음을 맞게 될는지 모르는 절망과 고통이 서려 있는 현장입니다. 이 감옥에 들어 온 것은 바울이 잘못을 저질러서 죄 값을 치루는 자리가 아닙니다. 그는 복음을 전하다가 잡혔습니다. 모진 고문과 상처가 일어나는 이 절망의 잡초가 피어나는 그 곳에서 지금 감사가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을 보세요. 예수를 알기 전 자기 생각으로 똘똘 뭉쳐있던 바울이 아닙니까? 위에 사람 없고 아래 사람 없을 만큼 안하무인이었던 바울이, 주님을 영접하고 한 순간에 자기 세계를 깨트리잖아요? 그리고 자기를 완전히 낮추잖아요? 그가 뭐라고 고백하였나요? “하나님, 나는 모든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사도입니다.” 놀라운 고백입니다. 그 교만하던 바울에게 정말 기적 같은 변화가 일어났어요. 그것만이 아니에요. 더 신앙이 깊어진 몇 년 뒤, “하나님 나는 모든 성도가운데 가장 작은 자입니다.”합니다. 자기를 더 낮추었어요. 또 몇 년 뒤 더 성숙된 후에는, “하나님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죄인입니다.”합니다. 완전히 낮아질 대로 낮아졌어요. 자기 생각 외에는 그 무엇 하나 받아들이지 않던 그가, 자기를 완전히 깨트렸어요. 더 이상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아니며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자기는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니에요. 오직 하나님만이 최고로 중요합니다.

여러분, 어떻게 해서 그가 자기 세계를 깨트리고 하나님께 완전히 항복하며 낮아질 수 있었나요?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난 후부터였습니다. 자기 죄가 용서받은 것도, 진리를 깨닫고 새 사람이 된 것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귀하게 쓰임 받게 된 것도 모두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요 하나님의 은혜란 걸 알았어요. 그래서 마침내 선언합니다. 지금껏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 자신의 노력, 지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까지 살았다고 고백했어요.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알고 있었기에 그는 자기의 완고한 세계를 깨트려갔던 겁니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그 은혜에 평생 동안 감사하며 살았습니다. 그는 성도들에게 무려 231번이나 감사의 단어를 사용하며 감사하며 살라고 하였어요. 대표적인 몇 구절만 보면,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항상 감사하노라(고전1:4).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롬6:17). 범사에 감사하라(살전5:18). 믿음위에 굳게 서서 감사하라(골2:17). 무엇이든지 감사함으로 아뢰라(빌4:6).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골4:2). 그가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는 구원하신 은혜에 감사, 사람 만들어 주신 은혜에 감사, 자신을 날마다 선한 길로 인도하신 은혜에 감사 또 감사하며 살았어요. 감사가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믿음의 반응이었던 것입니다. 사람이 은혜를 알 때 깊이 감사하며 살게 됩니다. 여기에 은혜를 아는 자의 감사가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을진대 우린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 은혜에 매일 매일 눈물로 고백하며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이에요.

감사는 보증 수표와 같습니다. 지금 현금이 없어도 감사하면 감사의 선물이 미래에 다가옵니다. 탈무드에도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지혜로운 사람은 누구인가? 어떤 경우에도 배움의 자세를 갖는 사람이다. 이 세상에서 제일 강한 사람은 누구인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은 누구인가? 지금 이 모습 이 대로를 감사하면서 사는 사람이다." 행복은 감사와 정비례합니다. 감사는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의 문제요 태도의 문제입니다. 믿음의 창문으로 보면 모든 것이 감사와 찬송입니다. 그러나 육신의 창문으로 보면 염려와 근심뿐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감사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아버지 되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범사에 감사하라. 항상 감사하라."고 명령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명령하시면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우리는 순종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명령하실 때에는 그 명령에 순종할 수 있는 은혜를 뒤따라 보내기 때문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하나님 저는 못합니다." "잔소리 하지 말고 범사에 감사해. 내가 범사에 감사할 수 있도록 은혜를 줄게." 순종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항상 감사하라." "어떻게 항상 감사합니까?" "할 수 있어. 내가 네게 능력을 준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변명을 하면 안 됩니다. 왜 이처럼 감사를 하나님이 강조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리고 우리 삶에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식의 선택이 아니라 이처럼 강한 명령을 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것만이 우리의 신앙을 단단하게 세워주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동성의 여러분!

우리 중에는 감사거리가 없어 감사하지 않아도 될만한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살전5:18)고 하셨습니다. 값없이 얻은 구원에 감사하지 못할 자가 어디 있습니까? 일용할 양식을 높고 감사하지 않아도 될 사람이 누굽니까? 광야의 어려운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도움을 받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모든 사람이 '범사에 감사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므로 여기에서 제외될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 모두 감사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감사하지 않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어느 성도의 고백처럼 "나는 장미를 들고는 수백 번 감사를 했지만 가시를 가지고 감사한 일은 한번도 없었습니다."라는 말은 솔직한 고백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감사는 온전한 감사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장미를 놓고 감사해야 되지만, 가시를 놓고도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가시의 가치를 가르쳐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하면서 가시를 가지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눈물이 무지개로 바뀌는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길 원한다면 장미와 가시를 동시에 놓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평생 장미만 들고 인생을 화려하게 사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도 예외 없이 가시 때문에 찔리고 고통하는 일들이 가끔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도 예외 없이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항상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감사할 것이 없습니까? 이 시간 감사하지 못하겠다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감사가 뭔지를 모르기 때문에 못하는 것일 뿐 다 감사할 제목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감사합니다 라는 말이 혀에 붙기 전까지는 아이에게 아무 말도 가르치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생애 첫 말이 된다는 것,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범사에 감사하라.’ ‘항상 감사하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우리에게 베풀어주실 복이 많기 때문입니다. 감사를 통해서 그 복을 누리도록 말입니다. 신앙인으로서 감사하며 산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당연히 감사하며 살아야 할 우리들이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복을 마음껏 누리지 못한 채 살아가곤 합니다. 감사가 이제 우리의 삶에 당연한 것이 되게 하십시다. 매일 매순간이 감사로 넘쳐나는 삶을 사십시다. 그러면 우리는 더욱 큰 은혜와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민수기 14:28절에 보면 자고나면 늘 불평하는 광야에 있는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라.” 무슨 말입니까? 광야 생활 중 조금이라도 어려움이 닥치면 원망하고,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을 아주 싫어하십니다. 원망은 곧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인정하지 않는 불신앙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원망할 때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진노하셨습니다.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라.” - 무서운 말이 아닙니까?

우리가 혹시 고난을 당할 때에도 하나님의 섭리를 헤아리며 인내하고 감사하는 게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실 정도로 나를 사랑하신다면 지금 처한 고난에는 뭔가 뜻이 있지 않겠느냐 하는 겁니다. 그 뜻을 헤아리며 인내하고 감사하는 게 성도의 도리라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노력하고 수고한 만큼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열심히 공부했는데, 시험 성적이 영 좋지 않게 나올 수도 있습니다. 열심히 장사했는데 남는 것은 고사하고 밑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열심히 신앙생활한다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내 수고를 받지 않으시고 내게 아무런 은혜도 베풀어주지 않으시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마십시다.

아직 우리가 감사할 수 없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지금 내게 축복의 열매로 자라고 있습니다. 내가 겪었던 고통과 아픔의 순간, 힘들고 어려웠던 일들은 언젠가 내게 큰 축복으로 열매 맺혀질 것입니다. 그런 힘든 일들이나 힘든 순간들이 내게 고통만 안겨준 채 지나버리진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모든 일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반드시 복 주실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약속합니다. 고난은 축복을 가져다준다고 말입니다. 고난은 반드시 축복으로 열매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께서 내게 주실 축복이 있음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현실만을 보게 하지 않습니다. 어렵고 힘든 현실 속에 살고 있더라도,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내일의 축복과 영광을 보게 만들어줍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1절에서 믿음을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정의해 줍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믿음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실 축복된 내일을 기대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약속하신 내일의 그 축복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감사입니다.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고난의 땅에서 내일 주어질 축복의 땅으로 건너가게 만드는 것이 감사입니다. 그래서 감사는 징검다리입니다. 고난의 땅에서 축복의 땅으로 건너가게 만드는 징검다리가 감사입니다.



우리는 다음 주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나는 이 한해 어떻게 살아왔는가하는 것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나눠드린 봉투에 5가지 감사를 기도하면서 적어보세요. 요즘 모두가 힘들어 합니다. 우리네 인생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유한한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런 우리가 살아가야 할 세상 역시 한치 앞도 예측하기 힘든 불확실한 세상입니다. 그런 세상을 살아가야 할 우리들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는 내일을 帽鑿만庸 먼저 감사하는 삶을 산다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분명한 고백, 내 삶을 아름답게 이끌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을 때에만 가능합니다. 베풀어주신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의 예물을 드리는 것도 아름다운 믿음이지만, 은혜 베풀어주실 줄 믿고 미리 감사하며 드리는 예물은 더욱 아름다운 향기가 나는 예물입니다. 감사에는 현실을 초월하는 신비한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무언가 내 계획대로 되지 않고, 자꾸만 일이 꼬일 때 마음이 불안하고 조급해집니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답답하고 해결의 길이 보이지 않아도, 그럴수록 하나님께 감사하며 사는 사람은 정말 신기하게도 길이 열리게 됩니다. 감사는 막혀진 길을 뚫는 능력입니다. 감사는 풀려지지 않는 문제의 실마리를 푸는 열쇠입니다. 불가능을 가능케 만드는 기적입니다.

영국의 성경 주석가 메튜 헨리(Mattew Henny, 1662-1714) 목사님은 “감사는 산수에서 더하기(+)와 같다”고 말했습니다. 감사하면 거기에 하나님의 은총이 더해지기 때문입니다. 어떤 일이든지, 어디서든지 감사하면 플러스의 은총이 주어집니다. 그래서 시인의 고백처럼 우리의 삶에 기적을 경험하게 만들어줍니다. 그러나 반대로 원망과 불평은 빼기(-)와 같아서 있는 것까지 빼앗기고 없어지게 만듭니다.

우리의 삶을 너무 분주하게 살면서 잊어버렸던 감사를 회복하는 절기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불평거리를 뒤집어 보면 감사가 보입니다. 억지로라도 감사하며 사십시다. 그래서 그 감사에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더욱 풍성히 누리십시다. 감사는 하늘의 은혜를 내 삶으로 끌어오는 통로입니다. 그래서 감사는 우러날 때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서라도 해야 합니다. 감사를 창조하는 신앙 - 그 신앙이 하늘의 복을 풍성히 누릴 수 있는 신앙입니다.

감사 - 그것은 불평과 불만을 제거하는 제초제입니다. 여러분, 감사는 우리의 생각을 바꾸게 만들고, 삶을 바꾸는 능력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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