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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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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선택하신 이유 딤전1:12-16. 2014년 10월 5일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14-10-05 | 조회: 1510
지난 번 제 카톡에 재미난 광경을 보낸 교수 한분이 계셨습니다. 물이 가득담긴 물통을 그대로 온몸에 쏟아 붓는 장면입니다. 여러분도 아시지만, ‘아이스 버킷 챌린지’라는 것이 아닙니까? 이는 누군가의 지명을 받은 사람이 차가운 얼음물을 뒤집어쓰는 것을 말합니다. 미국에서 시작된 이 작은 움직임에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한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 게이츠 회장 등 유명 인사들이 동참했습니다. 그리고 연예인이나 유명 정치인들을 비롯한 사회 지도층 인사들을 중심으로 SNS를 통해서 급속도로 퍼져 나갈 정도로 엄청난 반응을 일으켰습니다. 차가운 얼음물을 뒤집어쓰는 이 아이스 버킷 챌린지는 그냥 재미삼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미국 루게릭병협회(ALS)가 루게릭병 환자를 돕기 위한 모금운동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차가운 얼음물을 뒤집어 쓰냐면, 루게릭병이 어떤병인지를 조금이라도 알자는 것입니다. 이병은 온몸의 운동신경세포가 파괴되어 점차적으로 호흡근이 마비되어 사망에까지 이르는 무서운 병입니다. 그 루게릭병 환자들이 느끼는 고통이, 마치 차가운 얼음물을 뒤집어쓰는 순간 온 몸의 근육이 수축되면서 느끼는 고통과 비슷기 때문에 얼음물을 뒤집어쓰는 것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차가운 얼음물을 뒤집어쓰도록 여러분을 지목했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니 지목받으실 때 기분이 어떠실 것 같습니까? 아이스 버킷 챌린지는 고통을 당하고 있는 루게릭병 환자를 돕고, 그들의 고통을 느껴보자는 좋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나를 지목해서 차가운 얼음물을 뒤집어쓰라고 한다면 그것은 결코 기분 나쁠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을 지목해 준 사람이 고마울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사람들에게 내가 인정을 받는 것, 정말 보람이 있고, 그것 때문에 자신감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지목하시고 직분을 맡기신 정말 엄청난 은혜를 받고 견딜 수 없는 감격의 고백을 합니다. 12절에 보시면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새번역 성경을 보면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분은 나를 충성된 자로 여기시고, 그분을 섬길 수 있도록 하셨으며, 필요한 힘까지 주셨습니다” 바울 사도는 아무리가 생각해 보아도 자기가 하나님의 직분을 맡은 사도가 되었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아시지 않습니까? 바울이 예수를 만나기 전에 하나님을 위한다는 열심을 가지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죽이는데 앞장섰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난 후에는 그게 얼마나 잘못된 일이었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13절에 고백합니다. "전에는 내가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그 때는 정말 어리석게도 잘못 알고 악을 저질러 왔다는 것입니다. 15절에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고 고백할 정도로 잘못된 삶을 살아왔습니다. 정말 바울은 감추고 싶은 과거일 것입니다. 누가 자신의 수치를 드러내고 싶은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더구나 지금은 모든 성도들에게 존경받는 자리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 부끄러운 허물이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서 들추어질 때에는 창피한 일이고 부끄러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여기 "전에는 내가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 였다는 이것이 어느 정도인지 아십니까? 여러분, 사도 바울에게 가장 큰 부끄러운 과거는 무엇이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가 되고, 이방인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사도 바울에게 가장 감추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이겠습니까? 그건 아마도 예수 믿기 전에 예수 믿는 사람을 죽이는데 앞장섰던 바로 그 일일 것입니다.

지금은 자신이 생명을 바쳐 복음을 전하고 있지만, 예전에는 어리석게도 이 복음의 능력을 깨닫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생명의 주이신 예수님을 이단의 괴수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이단의 괴수인 예수를 따르는 무리들은 마땅히 처단되어야 할 이단의 무리들이라고 생각하고 그들을 죽이는데 앞장섰습니다. 첫 번째 순교자인 스데반을 죽이는데도 앞장섰고, 그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다메섹까지 가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오려고 먼길을 마다하지 않고 갔던 사람입니다. 뿐만 아니라 부흥하는 예루살렘 교회를 잔멸했다고 표현 할 정도로 엄청난 죄를 저지른 사람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그런 부끄러운 과거를 감추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기 제자인 디모데에게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자기가 과거에 행했던 부끄러운 일들을 폭로하고 있는 것입니다. 웬만한 사람들은 다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감추려고 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그렇게 말하고 있는 의도는 무엇입니까? 자신의 지난 날 감추고 싶었던 과거를 드러내며 자기 제자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던 것은 바로 자신이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이 자기를 믿어 주셨기에 가능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수치를 드러내서라도 그 믿어주심을 드러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쩌면, 우리 역시 정말 소망이 없는 자들인데 그런 나를 믿어주시고 주께서 견뎌 주셨기 때문에 오늘 내 모습이 있지는 않으십니까? 여러분 가운데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보신 분이 계십니까?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톰 행크스 주역의 전쟁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 이라는 전쟁영화가 있습니다. 세계 2차 대전 중 19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오마하 해변에서 전개되고 있습니다. 미군 밀러대위는 부하들과 함께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며 상륙임무를 완수합니다. 같은 시각, 전사자 통보업무를 진행하던 미국 행정부는 네 형제가 모두 참전한 라이언 집안에서 세 명의 젊은이가 이미 전사했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막내도 낙하산으로 그 상륙작전에 침투되었던 것입니다. 비탄에 빠진 라이언 부인을 위해 마샬 장군은 네 번째 아들인 제임스 라이언을 반드시 찾아오라고 명령합니다. 그 특수명령은 이제 막 상륙한 밀러 대위에게 내려졌습니다.

밀러 대위는 일곱명의 대원을 데리고 그를 찾아 나섭니다. 여덞 명이 한 명을 구하러 가라는 무모한 명령에 대해, 부대원들은 “도대체 세상에 이런 이상한 계산이 어디 있어!”라고 투덜댑니다. 그러자, 밀러대위는 대답합니다. “라이언은 착한 사람일 거야. 우리가 구해야 할 가치가 있을 만큼.”부대원들은 독일군 지역 깊숙이 들어가 전투를 치룹니다. 찾아가는 도중 동명이인의 다른 라이언을 만나기도 하고, 비현실적인 임무를 수행하는 도중에 몇 명의 대원이 목숨을 잃기도 합니다. 죽어가는 동료들을 바라보면서, 부대원들은 과연 1명을 구하기 위해 8명의 목숨을 걸어야 하는지 끊임없이 못마땅하게 여깁니다. “1명의 목숨이 8명의 목숨과 바꿀만한 가치가 있는가?”

드디어 라멜지역에서 문제의 라이언을 찾아냅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해 라이언 일병을 찾기는 했지만, 불행하게도 마지막 전투에서 라이언 일병만이 살고 밀러대위와 소대원 전원이 죽습니 밀러 대위는 죽어가면서 라이언 일병에게 말합니다. “나는 네가 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었기를 바란다. 이 모습들을 감사히 받아라!”. 그들의 희생을 감사히 받으라는 말이지요. “오직 너 하나를 살리기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의 용기와 희생으로 너는 살아났다. 그들은 더 이상 바칠 것이 없다. 그러나 너에게는 있다. 너는 그들의 희생에 걸 맞는 인생을 살아가라. 죄책감에 빠지지 말고 그들이 행한 일을 감사히 받아라.”

오늘 본문에 보면 바울은 자신을 자격이 없다고 보는데 하나님은 자격 있다고 하시고, 자신은 도무지 사도의 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 하십니다. 자신은 죄가 많아서 안 된다고 하는데 하나님은 문제 삼지 않으신다고 하시는 그 사랑 앞에 어떤 반응을 가집니까? 그는 죽는지 사는지 모르게 일했습니다. 마치 하루 종일 놀다가 오후 5시에 일당 받기로 하고 포도원에 들어가서 일하게 된 노무자의 심정으로 헌신했습니다. 감지덕지해서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었습니다.

그가 고린도후서 12장에서 실토한 것처럼 그리스도의 일꾼으로서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한 위기를 넘겼다면 그리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 앞에 고개를 쳐들고 자기 공로를 이야기할 만도 한데 그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 모든 수고를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합니다. 참, 겸손한 이야기가 아닙니까? 이렇게 자신을 믿어 준 그 시실을 알 때 한 생을 다 쏟기까지 주님을 위해 아낌없이 살아가지 않습니까? 결국 사람의 변화는 교육이나 환경이나 노력에 의해서가 아닌 하나님은 만나야 하는 것임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21세기 미국의 신세대 영성의 기수로 손꼽히는 레너드 스윗 박사가 쓴 책 가운데 재미있는 제목이 눈에 띱니다. “나를 미치게 하는 예수”(Jesus Drives Me Crazy)라는 책입니다. 스윗 박사는 이 책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미치게 하기 원하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미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 때문에 비정상으로 보여야 하는데 모두가 정상처럼 보이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 때문에 미친 사람들 세상 사람들 눈에 미친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미친”이라는 뜻의 "NUTS"라고 부릅니다. 이 NUTS는 “성령을 결코 과소평가하지 마라”(Never Underestimate The Spirit)의 약자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때문에 미친 사람들은 늘 성령의 음성을 소중하게 듣고 그 음성에 응답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를 제대로 믿는 사람들은 예수 때문에 세상 사람들에게 비정상적 즉 NUTS로 보이는데 그 이유는 늘 성령의 음성을 듣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NUTS여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 미친 사람처럼 보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 이유는 그 심령 속에 예수의 영이신 성령께서 계셔서 늘 우리를 남다른 삶을 살라고 말씀하시고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아까 라이언 일병 구하기라는 영화를 소개했습니다. 그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노인이 된 라이언일병은 가족들과 함께 격전지를 다시 찾습니다. 밀러대위와 소대원들의 고귀한 희생을 떠올리면서, 자신의 삶이 그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노라고 울먹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들에게 심각한 질문을 던집니다. “수많은 전쟁 끝에 살아남은 당신은 과연 그 희생의 대가로「살아 남을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었는가?” “피비린내 나는 전투에 바쳐진 전우들의 거룩한 희생을 과연 그대는 감사하게 받으며 살아왔는가? 지금이라도 그들의 희생을 감사함으로 받으라!!”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주님은 나 하나를 구원의 자녀로 삼기 위해 이 더럽고 추악한 냄새가 나는 이 세상 한 복판에 당신의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죄악으로 물들고 오염된 나 하나를 건지기 위해 낮은 자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뛰어드신 것입니다. 뭐 자격을 따지지도, 무엇을 요구하지도 않으시고 그냥 달려와 십자가에서 나의 더럽고, 역겨운 냄새로 진동하는 나의 죄를 그대로 끌어안으시고, 희생 제물로 나 죽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있는 그 모습 그대로 받아 주십니다. 내가 뭔데, 도대체 나란 인간이 뭐길래, 하나님께서 외아들 독생자를 아무 조건 없이 주셨냐는 말입니다.

지금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세상으로부터 부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세상으로 보냄 받은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는 곳곳마다 여러분은 위대한 영향력을 나누며 살아가게 될 하나님의 위대한 백성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세상을 바꿀 위대한 백성 거룩한 백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우리를 지명하여 부르시고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자답게 세상에서 당당하게 사십시다. 하늘의 영광을 얻은 자답게 하늘의 기쁨을 소유한 자로 사십시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자녀됨의 권세를 가진 자답게 당당하게 사십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세상에서 죄와 유혹 앞에 초라한 모습으로 사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자녀인 우리가 세상을 이기며 담대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런 하나님의 기대대로 세상을 이기며 믿음의 승리자로 사십시다. 우리는 선택하심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어떠합니까? 지금 조국 한국은 나라를 바르게 섬겨야 할 위정자들이 혼란한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금융 사고는 하루가 멀다하고 일어납니다. 돈이 있어도 은행에 맡길 수 없는 세상, 사랑스러운 내 자녀들을 학교에 맡기기 힘든 세상입니다. 건강한 젊은이들이 일자리가 많아야하는데 실업자가 흘러넘치고 있습니다. 아직도 신용불량자의 수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조금만 눈을 돌리면 아직도 전쟁에 대한 두려움이 있고, 세계는 지진과 전쟁, 그리고 기아와 굶주림으로 절규하고 있습니다. 영적으로도 사탄이 그저 제철을 만난 듯 미친 듯이 날뛰고 있습니다. 이곳저곳에서 우상들이 판을 치고 있고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려는 영적 어두움이 우리를 덮으려하고 있습니다.

이런 어려운 시기에 복음들고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말 어설프게 한발은 세상에 딛고, 또 한발은 교회에 딛는 어정쩡한 모습을 가지고 어떻게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 지식을 온 땅에 펼쳐나가리라 생각하십니까? 이젠 죽으면, 죽으리다라는 일사 각오의 신앙으로 열정을 다해 사역을 감당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 모두 여러분의 처한 자리에서 일어나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나의 구원이신 예수님을 붙잡고 한 생 정말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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