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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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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표가 있는 인생 막6:30-32. 2014년 7월 27일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14-07-27 | 조회: 1617
여러분, 혹시 이런 생각 안 해 보셨습니까? “야, 일 더미에서 벗어나 어디 가서 한 달쯤 푹 쉬고 싶다!”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할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아, 피곤해!” 그래서 약국에서는 피로회복제가 제일 잘 팔리고, 동네마다 사우나와 찜질방이 성업 중입니다. 요즘 휴가철인데 많은 분들이 도심을 탈출하고 있습니다. 또 주말에는 레저를 즐기는 분들도 많습니다.




모두 다 좋은 일입니다. 쉼이 없는 인생은 마치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처럼 위험합니다. 인간은 중간 중간 쉬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쉬어 봐도 그때뿐이지 피로감이 말끔하게 해소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심한 경우 휴가를 보내고 와서 오히려 더 피곤해질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아, 피곤해!” 이 말을 달고 삽니다. 이처럼 만성피로감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게 무엇이겠습니까? ‘참된 안식’입니다. 휴식을 취할 때 잠시 느끼는 일시적인 안식이 아니라, 일관된 삶의 방식 즉 라이프스타일로서의 참된 안식이 필요합니다.



김정운 교수가 저술한 "노는 만큼 성공한다"는 책이 있습니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다음같이 쓰고 있습니다. "내가 하는 ‘노는 이야기는 그저 재미있는 이야기가 절대 아니다. 한국의 미래가 걸린 정말 중요한 이야기다. 독일에서 머리가 한 움큼씩 빠지도록 13년간 심리학을 공부한 내가 노는 이야기나 하고 다니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한국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는 왜곡된 여가문화에서 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리학적으로 창의력과 재미는 동의어이다. 사는 게 재미없는 사람이 창의적일 수 없는 일이다. 성실하기만 한 사람은 21세기에 절대 살아남을 수 없다. 세상에 갑갑한 사람이 근면 성실하기만 한 사람이다. 물론 21세기에도 근면 성실은 필수불가결한 덕목이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는 어림 반 푼어치도 없다. 재미를 되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는 "나는 놈 위에 노는 놈 있다"고 말합니다. 잘 노는 사람이 일 잘 하는 사람이라고 그는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은 쉬어야 할 때입니다" 라는 글이 있습니다. 방글방글 웃고 있는 아기를 보고도 마음이 밝아지지 않는다면 지금은 쉴 때입니다. 식구들 얼굴을 마주 보고도 살짝 웃어주지 못한다면 지금은 쉴 때입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창문을 비추는 아침 햇살이 눈부시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지금은 쉴 때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하루가 궁금하지 않고 전화도 기다려지지 않는다면 지금은 쉴 때입니다. 오랜만에 걸려온 친구의 전화를 받고 "바쁘다"는 말만하고 끊었다면 지금은 쉴 때입니다.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면서도 소리만 들릴 뿐 마음에 감동이 흐르지 않는다면 지금은 쉴 때입니다. 슬픈 영화를 봐도 눈물이 나오지 않고 슬픈 연속극을 보면서 극본에 의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지금은 쉴 때입니다.



오래된 사진첩을 넘기다가 반가운 얼굴을 발견하고도 궁금해지지 않는다면 지금은 쉴 때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뒤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기 위해 한 번 더 뒤돌아보지 않는다면 지금은 쉴 때입니다. 아침과 저녁이 같고 맑은 날과 비 오는 날도 같고 산이나 바다에서 똑같은 느낌을 받는다면 지금은 쉴 때입니다. 당신은 그동안 참 많은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일 한 가지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쉬는 일입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아, 지금은 내가 쉬어야 할 때이구나'라고 느끼지 않는 현대인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저는 그 생각을 가장 절실히 하는 사람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제가 쉼에 대한 설교를 준비하면서 문득 내가 나를 비웃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보니까 중증 환자 같습니다. 일 중독증에 빠져 있는 내 모습이 보였습니다. "당신만 잘 쉬면 다 잘한다." 그래서 이 설교는 제가 제게 하는 설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둘씩 짝을 지워 파송하시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제자들은 능력을 받아 각 곳에 흩어져서 열심히 전도를 했습니다. 병 고침의 역사가 일어나고, 귀신을 쫓아내는 역사가 일어나고, 죄인들이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렇게 놀라운 전도의 열매를 맺고 돌아온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잠깐 쉬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잠깐 쉰다는 말은 휴식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30절을 보면 “사도들이 예수께 모여 자기들의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낱낱이 고하니”




여기에 어떤 단어가 스트레스를 일으킵니까? 여기 “낱낱이” 란 단어입니다. 정확하다는 면에서 매우 좋은 것이예요. 그러나 아마도 예수님의 제자들은 도착하마자 아마 숨 돌릴 겨를도 없이 몰아세우면서 그들이 있었던 일들을 막 보고하기 시작 했을 것입니다. 낱낱이 보고하자 주님은 제자들을 얼굴을 바라보시다가 그 보고를 중단 시킨 것으로 보여 집니다. 아마도 그보다 중요한 안식의 여유가 제자들에게 필요하다고 주님이 판단하셨기 때문입니다. 여기 31절에 보시면, “이르시되 너희는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 하시니 이는 오고가는 사람들이 많아 음식먹을 겨를도 없음이라” - ‘잠깐 쉬어라’




여러분, 반드시 긴 안식만이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아니예요. 잠깐의 안식, 여러분 잠깐의 새우잠, 얼마나 달아요. 잠깐의 낮잠, 잠깐의 산책, 잠깐의 망중한, 이 잠깐의 휴식도 우리 인생의 장에서 얼마나 여유를 제공할 수가 있습니까? 주님은 그리고 다시 이 잠깐의 휴식 을 통해서 얻어진 삶의 에너지를 가지고 다시 그를 기다리고 있는 산적한 문제 앞에 서서 복음을 외치고 말씀의 사역 하실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 ‘쉼?은?아나 포신’인데 ?아나?(ana)는 ?다시?라는 뜻이고 ?포신?(pausin)은 영어의 ?pause' 다음 단계의 행동을 위한 '멈춤'이란 뜻입니다. 쉬고 나면 새로운 창조를 위한 새 힘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안식은 새로운 창조인 것입니다. 최근에 많이 읽히는 시중 책 중에 ?행복한 멈춤?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본래의 제목은 ?행복한 멈춤?이 아닌 ?능력 있는 멈춤?입니다. 저자는 우리가 하루에 단 3분이라도 멈추어 서서 행복한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이 이루어진 것을 믿고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다면 우리의 인생은 경이적으로 달라질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그렇다면, 사랑하시는 여러분,

휴식은 억지로라도 만들어야 합니다. 안식이라는 것은 억지로라도 선택해서 만들어야 합니다. 유대인 출신 심리학자 가운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빅터 프랭클린이라느 분이 계십니다. 소위 ‘의미의 요법’이라는 것을 창안한 분입니다. 이 분이 나치 독일에게서 체포 되어서 감옥소에서 많은 세월을 보내면서 나중에 그것을 회고하는 책을 썼습니다. 자, 이 비참한 감옥, 나치 독일의 비참한 감옥 속에서 그는 이런 말을 남깁니다. 자기 감옥 안에 갇힌 사람들에게 한 말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많은 것을 빼앗겼습니다. 저들은 나치 독일은 우리에게서 부모를 빼앗아 갔고, 처자식을 빼앗아갔고, 사랑하는 친구를 빼앗아 갔고 사랑하는 애인을 빼앗아 갔습니다. 저들은 우리에게서 편리한 모든 것을 빼앗아 갔습니다. 그러나 저들이 결코 빼앗지 못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고통스런 환경 속에 있지마는 이 고통스런 환경 속에 어떻게 반응 하느냐, 반응할 수 있는 선택의 자유, 이것만은 아무도 빼앗지 못합니다. 여기서도 우리는 여호 와를 찬양하셔야 합니다. 위대한 미래를 꿈꾸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현실이 점점 더 힘들고 어려움이 있을 찌라도, 그래서 하는 일이 잘 안되므로 우리가 다 같이 고통을 받고 있지만, 고통에 반응하는 것 이것은 사람마다 달라요. 이 고통 속에 좌절하고 생을 포기 하는 사람이 있 지만, 그러나 이 고통은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이 고통 앞에서 새로운 미래를 꿈꾸며 설계 하는 선택은 아직도 가능합니다. 다 같이 힘들고 어렵지만, 불행 앞에서 우리에게는 선택의 자유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빅터 플랭크린 박사 는 말하기를 '나는 여기에서 묵상을 선택한다. 나는 눈을 감고 미래를 쳐다본다. 그리고 빛나는 미래를 향해서 나는 나아간다. 나는 이 감옥 에서도 희망을 선택한다.' 여러분, 그래서 휴식이라는 것은 억지로라도 필요한 것입니다. 휴식, 그러면 어디로 가는 것만을 생각지 마세요. 우리가 좀 돈이 없어도, 여유가 없어도, 우리 식구들에게 안겨줄 수 있는 푸짐한 선물이 없어도 여러분, 가족들이 오래간만에 좋은 시간을 가져보세요. 전화코드도 뽑아버리고, 온 식구들이 가슴을 폭 놓고 인생도 이야기하고, 하나님도 찬양하고 예배도 들이고 오래간만에 이 조촐한 시간, 이것도 위대한 안식이 아닙니까?




그리고 진장한 안식은 영적인 자리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저는 이것이 진정한 안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배는 안식일 수가 있습니다. 이따금식 보면 예배시간에도 휴대폰이 울리는 모습, 또 여기 저기 ...'그렇게 인생을 살 필요가 있냐?' 그것을 꺼버리고 예배 시간만이라도 마음으로라도 안식하면 얼마나 좋아요. 그거 없으면 인생을 못 살아요? (저는 휴대폰을 꺼버리는 팔아치우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이 포함된 막1장에 보면 우리 예수님의 하루 스케줄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하루 종일 굉장히 바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안식일 오 회당에 들어가셔서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다가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방해를 하자, 귀신을 쫓아내고 그를 고쳐 주셨습니다. 그 후에 회당에서 나와 시몬의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아마 이 때는 안식일 오후였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시몬의 장모의 열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그냥 발 씻고 주무신 것이 아닙니다.




33절에 보면 “온 동네가 그 문 앞에 모였더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보면, 예수님의 소문이 온 갈릴리 지방에 퍼져서 날이 저물어 저녁이 되었을 때, 수많은 병자들과 귀신들린 사람들이 시몬의 집으로 몰려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많은 병자들과 귀신들린 자들을 일일이 고쳐주셨습니다. 아마 병자들과 귀신들린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신 경험이 있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귀신들린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육체적으로 많이 피곤합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바쁘게 사역을 하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살인적인 스케줄이 아닙니까?




이쯤 되면 인간의 몸을 입고 계신 예수님께서는 몹시 피곤하셨을 것입니다. 아마 조금 과장하면 파김치가 되듯이 녹초가 되셨을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전날 늦게까지 사역하셨기 때문에 늦잠을 주무셨습니까? 아니면 오전 스케줄을 다 취소하고 휴식을 취하셨습니까? 아닙니다. 1:35절을 보면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한적한 곳으로 가셨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 피곤한 삶을 자신만의 휴식을 가짐으로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는 재충전의 시간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




여기 잠깐이라도 쉬어라 했는데, 주님은 한적한 곳에서 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여기 한적한 곳은 갈릴리 바다에서 멀지 않은 곳에 벳세다라는 평야를 말합니다. 그것은 일종의 아주 작은 사막이었습니다. 저는 문자 그대로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자기만의 광야, 자기만의 광야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집안에 방 하나를 여러분 광야로 만들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조용히 쉴 수가 있는 곳, 혹은 여러분 집 근처의 조용한 오솔길, 혹은 어느 산마루, 늘 내가 마음이 아프고 괴로울 때 찾을 수 있는 광야, 거기서 주 앞에 엎드리고 기도 할 수 있는 자기만의 사막, 자기만의 광야가 있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 한적한 곳은 주님의 영광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걸고 할 만큼 보람찬 일을 할 수 있는 현장을 말합니다. 최근 신조어가 있지 않습니까?. ‘볼런테인먼트’(Voluntainment) 즉 ‘놀이로서의 봉사’라는 단어입니다. 자원봉사자(Volunteer)라는 놀이(Entertainment)라는 단어의 합성어입니다. 봉사하는 게 힘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기쁘고 보람이 있다는 겁니다. 스포츠를 하면 땀이 나고 숨이 차지만 재미있어서 자꾸 하는 것처럼 봉사도 그렇다는 겁니다. 성도들의 경우 주일 봉사, 전도 활동, 국내단기선교, 해외단기 선교 등 모든 봉사가 힘든 것 같은 데 기쁘고 즐겁습니다. 그러니까 하지, 월급 준다고 하겠습니까? 때로는 부담 같은데, 감당하다 보면 기쁨이고 축복입니다.




이제 우리 교회는 이번 주간에 유. 초등부, 중고등부가 가평에 있는 한 기도원에서 여름 캠프를 합니다. 그리고 청년들이 단기 선교를 떠납니다. 이 과정은 우리 교회가 훈련을 통하여 또 하나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기 위한 수고와 헌신이 담겨 있습니다. - 이 자리가 주님이 원하시는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자신을 돌아보고 묵상하며 공동체가 또 다른 쉼의 현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동성의 여러분!

지금 여기 모인 우리 모두는 어떤 면에서 쉼이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환경오염을 피할 수 없듯이 정신 오염이라고 할 수 있는 스트레스를 피할 수가 없습니다. 사회는 우리에게 너무 많은 것을 한꺼번에 요구하나 우리는 그 요구에 응할 만한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스트레스는 자꾸 쌓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음에 쉼을 얻는 비결을 갖고 이 현실을 대처하지 못하면 비탈을 올라가던 소가 주저앉아 버리듯이 언제 우리도 모두 주저앉아 버릴지 모릅니다.



< /o:p>

사랑하는 동성의 여러분! 저는 이제까지 지성이든 건강이든 많은 은사를 받았지만 ‘하늘이 열리지 않아’ 제대로 쓰임받지 못하는 사람들로 너무나 많이 봤습니다. 하나님이 사용해주시지 않은 재물, 그것 때문에 싸움 나는 것을 숱하게 봤습니다. 하나님의 만져주심과 사용해주심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많이 갖춰도 하나님이 사용하시지 않으면 그뿐입니다. 참 묘한 것은, 내 손에 있을때는 초라했는데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니까 화려한 보석으로 변화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속 주님께 모든 것을 맡겨야 합니다.




휴식을 영어로는 recreation 즉 재창조라고 합니다. 휴식은 ‘재창조’가 된다는 뜻입니다. 요즈음에는 국립공원에 안식년제도가 있습니다. 산도 안식년을 만들어 입산금지를 시켰더니 다른 것을 하지 않아도 산이 깨끗해지고 울창해집니다. 단지 쉬게만 해주었을 뿐인데 산이 산다워집니다. 단지 휴식만 주어도 산이 창조 시와 같은 모습으로 회복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휴식은 재창조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산에게만 쉼이 필요할까요? 정말로 쉼이 필요한 대상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이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안식을 명령하셨습니다.



쉬지 않고 일만 하면, 그것은 일이 아니라 죽음으로 가는 길입니다. 암세포란 자기 조절 능력을 잃어버린 세포입니다. 쉬어야 할 때 쉬고, 번식할 때 번식하여야 하는데, 쉬지 않고 계속 자기번식을 진행시켜서 결국은 생명을 죽게 만드는 것이 암세포입니다. 사람이 전체를 생각하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 번영만을 추구하면 결국은 멸망에 이르게 하는 암세포처럼 되어 파멸을 몰아온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동성의 여러분! 이제 잠깐 쉬십시오. 이제 여러분 나름대로 진정한 회복을 위한 안식이 무엇인지 찾으십시오. 미래를 준비하는 그 안식은 육체적으로, 감정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균형 있게 쉬고 회복될 수 있는 여유를 갖는 것입니다. 이제는 쉼표가 있는 인생으로 살아보십시오. 그럴 때에 더 멀리, 더 복되게 삶을 창조적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여러분 오래간만에 주님을 묵상하시고 깊이 주님 안에 빠져보세요. 마11:28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 ' 그 주님의 품에 내 인생의 짐을 다 내려놓고 그 품안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고 또 나에게 주어진 사명을 위해 준비하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하십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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