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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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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세상의 빛과 소금 마5:13-18. 2014년 6월8일 주일 <창립 45주년>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14-06-08 | 조회: 1748
오늘 저희 교회 창립 45주년 기념 예배에 오신 여러분들을 환영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참 어려운 걸음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걸음이 인생의 강장 값진 걸음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묵묵히 교회에서 충성과 헌신으로 섬기시는 성도 여러분들께 다시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여기 처음 나오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먼저 좀 어두운 이야기부터 시작을 하려 합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가 19.4%라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5명 가운데 4명이 교회를 신뢰하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이어 “교회는 이제 하찮은 곳으로 전락했다. 교회가 교회로서의 목소리를 잃었다. 본질을 잃은 채 더 이상 세상과 구별되지 못한 무기력한 곳이 되버리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참 안타까운 이야기입니다.

20여 년 전까지 국민 전체의 20%정도가 교회를 다녔습니다. 2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캐톨릭이나 천년의 역사를 가진 불교보다 빠른 성장세를 보였습니다. 교회가 한국의 가장 큰 종교로 등극하나 싶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990년부터 한국 교회 부흥의 열기가 꺾이더니 성장속도보다 더 빠르게 쇠퇴해 갔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 힘과 영향력이 계속 약해져갑니다. 지금 전 세계에 존경을 받는 존 맥아더목사는 한국의 어느 일간지 기자와의 대담에서 ‘이런 속도로 나가면 얼마 가지 않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한국에 교회가 무너질 것이다.’ 참 무서운 말입니다. 특히 우리가 신앙생활하고 있는 이 시점에 이런 말을 듣는다는 것이 고통이며 충격입니다.

한국교회의 이 상황을 보시고 하나님이 얼마나 마음 아파하실까요? 저는 가끔 이 사실을 생각하면 정말 가슴이 아파오고 눈물이 날 정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소리를 거부할 것이 아니라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다시 한번 도약의 역사를 일구어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아십니까? 하나님의 관심은 교회입니다. 그분이 전심으로 사랑하시고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는 대상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교회입니다. 좀 잘못되어도, 책망을 들을 일이 있어도 주님은 결코 당신의 교회를 포기 하지 않으십니다.

가장 높으신 분이 늘 마음에 두고 생각하고 사랑하고 희망을 거는 대상이 교회라는 말입니다. 이 사실을 생각해 볼 때 우리는 교회라는 존재에 대해 새삼스럽게 주목하지 아니 할 수 없습니다. 교회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야. 너희는 세상의 빛이야.’ 여기에 ‘너희’라는 말은 굉장한 강조형입니다. ‘너희만이 세상의 소금이야, 너희만이 세상의 빛이야. 아무리 세상이 썩고 어두워도 나는 너희만을 믿어. 왜냐하면 너희들은 세상의 소금이요, 너희들은 세상의 빛이기 때문에 나는 너희들만 믿어.’ 하는 의미가 이 말씀 안에 들어 있습니다.

도대체 여기서 주님이 말하는 ‘너희’는 누구입니까? 1)너희는 주님이 사랑하시는 우리입니다. 2)주님이 죄에서 구속해준 우리입니다. 3)하나님을 위해 그의 나라와 백성으로 삼으신 우리입니다. 4)하나님을 위해 그 의 제사장으로 삼으신 우리입니다. 이러한 우리가 바로 교회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 참 어처구니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기대를 갖고 ‘너희만이 세상의 소금이야, 너희만이 세상의 빛이야.’라고 말씀하시는 대상인 나 자신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 캄캄하고 썩어 냄새나는 ‘세상이라고 하는 괴물’ 앞에 우리 자신을 놓고 보면 얼마나 초라해 보입니까? 얼마나 작아 보입니까? 무슨 빛을 발할 수 있으며, 무슨 소금 노릇을 할 것 같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조용히 내려다보시면서 ‘나는 너희만 믿어. 왜냐하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야. 너희만이 세상의 빛이야. 너희마저 없다면 이 세상은 소망이 없어. 절망이야’. 하는 말씀을 하고 계시니 한편으로는 부담도 되고, 한편으로는 주님의 우리를 너무 잘 봐 주심에 대해서 감격도 하고 긍지도 갖게 됩니다.

여러분, 소금을 잘 아시지요? 소금은 짠 맛이 특징입니다. 그 짠 맛 때문에 방부제 역할을 합니다. 예수님이 사시던 그 당시 지중해 연안만 해도 온도가 꽤 높은 지역이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냉장고도 없던 시절, 식품을 오래 보관하기가 매우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소금만 넣어 놓으면 적어도 한두 달은 신선하게 보존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 당시 사람들이 하늘의 태양 다음으로 이 세상에서 제일 소중히 여기는 것이 소금이다. 하는 말을 할 정도로 소금을 무척 아끼고 귀히 여겼다고 합니다. 썩지 않게 하는 이 방부제의 특성은 마치 예수님을 잘 믿는 하나님의 자녀가 이 세상에서 다른 사람에게 인격적으로 끼치는 감화와 비슷한 데가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들 세계에 들어가서 가만히 있어만 줘도 그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수가 있습니다.

마치 짠 맛이 들어가서 고기나 음식물에 신선도를 유지하여 썩지 않도록 하듯이 우리가 가만히 있기만 해도 우리를 통해서 내비치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 때문에 다른 사람이 좋은 영향을 받는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에 이런 생각을 합니다. ‘아, 어딘가 다른 데가 있어. 나도 좀 저렇게 되었으면 좋겠네.’ 하는 감동을 받습니다. 어떤 면에는 소극적이긴 하지만 조용히 다른 사람에게 짠 맛을 내는 일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가정 안에 이런 사람이 한두 명만 있어도 그 가정에는 절대 사고 나지 않습니다. 직장 안에서 이렇게 짠 맛을 가진 사람 얼마만 있으면 그 직장은 영적으로 어두워지지 않습니다. 더 나빠지지 않습니다.

빛은 무엇입니까? 빛은 어두움을 몰아내고 그 가운데 있는 것을 환하게 드러내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빛은 그 특성상 굉장히 직선적이고 적극적입니다. 어두움 앞에서 머뭇거리는 빛을 우리는 본 일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는 세상의 빛이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우리 자신의 진면목을 볼 수 있었고, 예수님 때문에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 어디에 열려 있는가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떠나셨지만 그 대신 그 빛 되신 예수님을 내 마음에 모시고 사는 우리 모두가 이 세상의 빛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태양이라고 하면 우리는 그 태양의 빛을 반사하는 예수님의 달입니다. 그래서 엡 5:8-9절에 참 소중한 말씀 있습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안에서 빛이라.’

너희가 누구입니까? 예수 믿는 우리 모두입니다.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우리를 빛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빛인 것을 사람들이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고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진실한 모습을 보고, 우리의 의로운 행동을 보고 세상이 우리를 빛으로 본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눈에는 우리 모두가 대단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보십니다.

물론 자신이 볼 때 내가 무슨 소금이냐 빛이냐, 냄새만 안 나도 좋겠다. 하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얼마나 크게 보시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우리가 빛과 소금이라는 사실을 우리 스스로 확인했으면 좀 더 구체적으로 어떤 영역에서 우리가 소금의 역할을 할까, 빛의 역할을 할까를 검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 너희는 바로 교회가 아닙니까? 교회는 이 시대에 소금의 역할 빛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무너져가는 이 시대를 다시 일으킬 수가 있습니다.


I. 먼저 우리 교회는 시대를 감당키 위해 영적으로 새로워져야 합니다.

생각해 봅시다. 한국 교회가 왜 쇠퇴하는 걸까요? 쇠퇴 원인은 우선 우리의 영적인 무기력에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주님은 너희는 소금이 되고 빛이 되라 말씀하셨어요. 소금과 빛의 본질은 이것입니다. 상대를 이긴다는 겁니다. 가령 소금이 들어가면 모든 음식에 간이 벱니다. 빛이 들어가면 모든 어두움이 사라집니다. 소금과 빛의 본질은 자신이 다른 것에 영향을 미친다는 겁니다. 지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겁니다. 여기에 소금과 빛의 본질의 가치가 있습니다.

몇해 전에 청년들과 말레지이아에 단기 선교를 가서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한국 교인들의 신앙이 모슬렘들의 신앙에 비해 매우 무기력하다는 겁니다. 며칠 동안 잠을 잤는데 새벽 4시 반만 되면 대형스피커에 기도문이 노래처럼 나옵니다. 시끄러워서 잠을 잘 수가 없어요. 모두가 깨어나서 기도하라는 거지요. 그들은 하루에 다섯 번씩 기도합니다. 새벽에, 점심때, 오후에, 해가 넘어간 직후에, 그리고 밤늦게 메카를 향해서 한번에 30분씩 하루에 다섯 번씩 기도합니다. 기도를 참 진지하게 합니다. 기도시간만 되면 아무 곳이나 양탄자를 펴 놓고 엎드려 기도합니다. 양탄자가 없으면 그냥 맨 바닥에 엎드려 기도합니다. 기도가 몸에 배었습니다. 게다가 그들은 안식일만 되면 금요일에 모든 자녀들을 데리고 사원으로 가서 예배를 드립니다. 가슴을 치며 눈물을 흘리며 예배를 드립니다. 예배자세가 매우 진지합니다. 혹시라도 자녀들이 그들의 신을 믿지 않으면 가장이나 친척들이 목을 칩니다. 가문이 철저히 한 신앙으로 통일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확신에 찬 믿음으로 충만합니다.

한국성도들도 하루에 5번씩 기도하는 열심이 없습니다. 그들처럼 뜨겁게 회개하며 예배하는 교회가 없습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이 일 주일에 한번 교회에 오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주 중에는 하나님 말씀도 잊고 살고 하나님찬양도 기도하는 것도 잊고 삽니다. 아예 하나님을 생각지도 않고 살다가 주일날 먼지 묻은 성경을 가지고 옵니다. 마음속에 하나님이 없으며 하나님 말씀이 없으며 하나님의 가르치심, 인도하심에 대한 믿음도 없어요. 한 주간 사는 것을 보면 마치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처럼 살아갑니다. 술에 물탄듯 미지근하게 살다가 간신히 주일날 기억하고 나옵니다. 이러니 어떻게 우리의 신앙이 세상 사람들에게 매력적이 될 수 있나요? 나 자신도 확신이 없는데 남에게 어떻게 확신을 줄 수 있나요?

여러분, 우리 성도 모두가 신앙생활에 열심을 내야 합니다. 기도하는 데에 예배드리는 데에 하나님 말씀을 읽고 말씀대로 살아가는 데에 지금보다 더 열심을 내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 품안으로 돌아와 더 열심히 신앙생활하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신앙과 가정의 전통이 견고해질 수 있습니다.


두 번째, 교회가 신앙생활에 더 열심을 품어야 할 뿐만 아니라 소금과 빛의 기능을 제대로 발휘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보세요.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한국 교회가 시들어져 가는 것은 소금의 맛과 역할을 잃었기 때문이며 빛의 역할을 잃었기 때문이에요. 소금과 빛에는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습니다.

소금은 썩는 것을 부패하는 겁니다. 빛은 어두운 곳을 밝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보는 것 가운데 하나는 이 세상은 타락했고 부패했다는 겁니다. 세상 사람은 돈, 권력, 명예를 좇느라 매우 타락했어요. 성적으론 얼마나 타락했는지 죄로 여기지도 않을 만큼 타락했습니다. 이런 도덕적으로 타락한 세상에서 소금의 역할, 빛의 역할을 하라고 우리 주님이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오히려 교회가 세상못지 않게 타락했습니다. 요즘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명예 무네, 물질 문제, 그리고 성추행이다 성폭행이다’로 곤욕을 치르고 있습니다.

가장 경건해야 할 지도자들이 추악한 행위에 빠져 있는 겁니다. 그리고 교인 역시 도덕적인 타락이 심각한 수준에 있습니다. 교회 역사를 보면 중세 시대가 교회의 암흑시기였어요. 그 당시 교회 밑바닥을 뜯어보면 어린 아이의 뼈들이 나옵니다. 수녀가 아기를 낳아서 교회 밑바닥에 묻어놓은 것이 훗날 밝혀지곤 했습니다. 이렇게 타락이 지속되니 교회가 암흑기를 맞고 쇠퇴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 교회가 중세 시대의 타락상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습니다. 요즘 크리스찬 범죄율이 전체의 30%를 차지한답니다. 기독교인은 겨우 16% 밖에 안되는데 범죄율은 두배나 됩니다. 예수믿는 사람들이 타락했습니다. 이러니 전도의 길이 막히고 하나님 영광 가리는 겁니다. 그래서 한국교회가 쇠퇴하고 있는 겁니다.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밟힐 뿐이라. 참 맞는 말씀입니다.


III. 그리고 교회가 세상을 변하시키기 위해서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소금의 역할은 녹아져야 맛을 냅니다. 그리고 빛이 빛으로의 역할은 타합니다. 자기 희생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이것을 아십니까? 소금의 화학 원소가 Nacl입니다. 이 na나 cl은 다 독입니다. 이것을 먹으면 죽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합하여 지면서 톡득한 맛을 내는 소금이 됩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독소가 합치니까 이 세상 어떤 것보다 귀한 맛을 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바로 녹아져야 합니다.

여러분, 기독교를 그렇게 핍박하던 로마가 AD313년에 기독교에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자그만치 300여년 동안 교회는 핍박을 받았습니다. 거의 씨가 말랐는줄 알았는데 거대한 로마가 복음 앞에 무너진 것입니다. 당시 놀라운 사실은 로마 안에 기독교 인구가 불과 2.7%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이들이 당시에 무서운 핍박과 고난 앞에서도 얼마나 아름답게 살았든지 콘스탄틴 황제마져 십자가 앞에 자신의 왕관을 내려놓고 예수를 영접합니다.

그렇습니다. 바다가 그렇게 싱싱하고 푸르름을 유지하며 각종 물고기의 요람이 되는 것은 불과 3.4%의 염분이 바닷물 속에 녹아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 사람들은 믿을 만한 사람, 그 인격이 진실하고 하나님을 향한 자세에 있어서 충성스러운 사람들을 가르켜서 “소금 같은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그들이 약속을 했을 때에는 그 약속이 변하지 않는 약속이 되기를 원하면서 이런 약속을 가르켜서 “소금언약”이라고 말했습니다. 신실한 약속, 변함이 없는 약속에 의해 살아가는 사람들-주님께서는 이 시대에 이런 소금과 같은 존재를 얼마나 요구하고 계십니까? 촛불을 보세요. 타들어 갈수록 더 영롱합니다. 그 희생이 주변을 밝히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대위빗 옥스버거(David Augsburger)는 그의 저서 “외길 영성”에서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위대한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지 않고 전도 명령을 수행하면 단지 큰 소란만 피울 뿐이다. 사랑이 없는 전도는 의미가 없는 겁니다. 그러나 세상이 아무리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아놓고 산다해도 교회가 세상을 향해 사랑으로 다가갈 때 사람들은 마음의 문을 엽니다. 교회가 가난한 자의 필요를 채워주고 돌봐주고 희생이 담긴 우정을 나눠줄 때 세상이 교회를 향해 호감을 가지며 교회의 가르침에 관심을 가지며 교회를 향해 매력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였을 뿐만 아니라 세상을 매우 사랑했습니다. 죄인들을 사랑했고 마음의 상처받은 자를 감싸 안았습니다. 권세 있는 사람이나 권세 없는 사람이나 주님이 사랑하지 못할 사람은 없었습니다. 마침내 주님은 온 인류를 사랑하여 인류를 구원하려고 자신의 생명조차도 세상을 위하여 내어 놓았습니다. 아낌없이 희생한 것입니다. 온 인류가 예수님을 찬양하고 존경하는 이유는 자신의 몸으로 세상을 향해 죽기까지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죽기까지 남을 사랑할 때 감동받지 않을 사람이 없습니다. 존경하지 않을 사람이 없습니다. 여기에 전도의 비결이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향해 사랑을 베푼다면 세상은 교회를 향해 돌아올 것입니다.

저는 목회자의 자녀이며 유명 가수인 김장훈씨를 존경합니다. 왜냐면 그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상에게 사랑을 쏟아붓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까지 100억이 넘는 엄청난 액수의 기부로 어려운 이웃에게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합니다. 그가 세상을 사랑하느라 자신의 전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는 동안 사람들은 큰 감동을 받아요. 그 때 그에겐 예수 그리스도가 있음을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알게 됩니다. 여기에 그의 전도의 힘이 있습니다.

이렇게 살아야 전도가 됩니다. 이렇게 살아야 교회가 살아납니다. 이제 45주년을 맞는 우리 교회는 세상에 ?을 내는 세상에 빛을 발하는 교회의 사명을 감당을 해야 합니다. 이젠 말로만의 전도가 아니라 정말 우리의 삶이 너무 아름다워서 당신이 믿는 예수 나도 믿고 싶다는 이 고백이 일어날 정도로 나의 삶에 예수 향기가 가득 일어나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인으로서 소금과 빛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은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있는 그곳에서 좀 양보하고, 희생하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그 속에 주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불신 영혼이 주께로 돌아와 하나님께 영광돌리게 됩니다.


주전 4세기경 그리스에 디오게네스라는 유명한 철학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그리스 아테네 도시를 대낮에 등불을 들고 걸어 다녔습니다. 그의 눈에는 아테네 도시가 어둠의 도시로 보였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도대체 밝은 대낮에 등불을 들고 다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디오게네스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이 시대를 밝힐 사람다운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소금과 같이 세상에 맛을 내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이 세상의 어두움을 밝힐 수 있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이제 45주년을 맞은 우리 동성가족들이 바로 주님이 이 시대에 찾으시는 한 사람의 소금과 빛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기도하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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